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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산티아고

3월 30일 에스떼야 , 31일 로스 아르고스

by 하루달

30일

순례길은 걸어서 가는 길과 자전거로 가는 길 두 가지가 있다. 표지판도 늘 두 개가 존재한다.

알베르게에는 2층 침대가 있다. 1층을 먼저 배정하고 2층으로 넘어간다. 어떤 알베르게는 방만 정해주고 층은 자유롭게 정하라 한다. 1층에서 자보니 아늑하다. 금방 잠이 잘 온다. 단 침대 높이가 낮을 경우 앉아 있기 불편하다. 엎드려서 글을 써야 한다. 2층에서 자보니 층고가 높아 앉아 있기 편하고 뻥 뚫린 느낌이 좋다. 그런데 오르락내리락 귀찮고 불안한지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알베르게는 공립과 사립이 있다. 공립과 사립에 상관없이 남녀구분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이 존재한다. 어떤 곳은 침대, 샤워실, 화장실 모두 공용이다. 부끄러움이 없는 분들은 아무 데서나 옷을 잘 벗는 것 같다. 유럽은 68 혁명 때 모든 것은 평등하다며 남녀 기숙사, 남녀 화장실 구분을 없앤 걸로 알고 있다. 알베르게도 그런 의미인 것 같다. 어떤 곳은 남녀구분이 있어서 생활하기 편하다.

알베르게에는 개인 사물함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이 있다. 사물함이 있으면 귀중품을 다 집어넣고 샤워를 할 수 있다. 사물함이 없으면 여권, 현금, 핸드폰을 늘 가지고 다녀야 한다. 그런데 와보니 핸드폰 충전하고 하고 외출하기도 한다. 아무도 귀중품에 관심이 없고 서로를 신뢰한다.

순례자들은 혼자 온 사람과 커플로 온 사람들로 나뉜다. 믿기 힘들 정도로 진짜 많은 사람들이 혼자 왔다. 혼자는 외롭지만 자유롭고 다른 사람들을 쉽게 사귈 수 있다. 둘이 온 사람들은 싸울 수도 있다고 들었다. 부부건, 커플이건, 엄마와 딸이건, 친구이건 한 번 이상은 싸워서 각자 걷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호주 커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지나칠 때 인사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데 남자가 하이 인사를 한다. 나도 웃으며 작게 굿모닝 인사를 했다. 여자는 울고 있다. 아, 저들은 벌써 무슨 일로 싸운 것일까, 확신하건대 별 것 아닌 아주 사소한 것일 것이다. 커플로 오면 든든하고 외롭지 않지만 사람들을 사귀는 데 한계가 있다.

순례자들은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과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오늘은 햇살이 좋다. 이틀 동안 쌓아둔 빨래를 하고 기다리고 있다. 에스테야 카푸치노스 알베르게 세탁실 옆에는 작은 정원과 테이블과 의자가 있다. 어떤 사람이 글을 쓰고 있다. 나도 앉아서 발가락 일광욕을 한다. 밴드를 다 떼고 자세히 살피고 있다. 따뜻하니 기분이 좋다. 방에 가서 폰을 가져와 글을 쓰고 있다. 사람들이 조금씩 모인다. 누군가 풀에서 요가를 하자고 한다. 나도 요가를 무척 좋아하지만 지금은 할 일이 있다고 했다. 글을 다 쓰고 슬리퍼 바느질도 했다. 빨래가 다 돼서 줄에 널고 의자에 또 앉았다. 6시에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한다. 한국인도 없이 이 많은 외국인이랑 짧은 영어로 대화하기 힘들다. 나는 마켓에 간다며 거절했다. oops, 식당에서 만났다. 나는 배고파서 바로 눈여겨둔 식당으로 갔다. 그들은 30분 뒤에 나타났다. 그런데 내 옆에 혼자 먹고 있던 남자, 여자도 순례자였다. 그들은 영어도 잘하면서 혼자가 편한 것이다.

알베르게 종사자는 출퇴근을 한다. 그래서 항상 사람이 있지 않다. 어떤 곳은 12시에 출근하고 어떤 곳은 5시에 출근하다. 나는 3시에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문이 닫혀 있어서 난감했다. 그들은 이메일로 문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왓츠앱으로 소통하거나 메일을 확인해야 한다. 퇴근을 하기 때문에 항상 문의 비번을 알아야 밖에 나갔다가 들어올 수 있다.

스페인 식당에는 비건요리와 아닌 것 두 가지가 있다. 나는 육류만 먹지 않는 비건이다. 베지터리언 요리만 시키면 돼서 너무나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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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이곳은 낭만이 가득하다. 소민 씨에게 풀밭에서 할 수 있었던 요가를 베드버그 무서워 놓쳤다고 하니 자신은 요가매트를 들고 온 외국인을 만났다고 한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걸 순례길에 한다는 것은 낭만이다. 좋아하는 종이책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그런데 종이책 기부도 많이 한다) 어제는 빨래를 마치고 폭신한 카우치에 앉아 수첩을 꺼내 끄적끄적 글을 썼다. 한국인 아저씨와 아르헨티나 아줌마가 자꾸 말을 건다. 또 알베르게 직원 생일인가 보다. 생일송을 여러 번 부른다. 모두에게 케이크를 나눠준다. 낭만적이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명소를 놓치면 어쩌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부엔카미노 앱에 나오는 명소는 순례길을 따라가다 보면 거의 나온다. 대장간이 나타난다. 모두 손수 만든 것이라 한다. 조개 목걸이에 새겨진 각각의 십자가 모양이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는 산티아고 의미를 가진 목걸이를 샀다.




또 걷다 보면 벽에서 나오는 와인을 마실 수 있다. 꼭두새벽부터 와인타임이다. 가방에 매달려 있는 조개를 컵으로 마시기도 하고 물병 뚜껑에, 또는 물병에 따라 마시기도 한다. 알래스카 부부는 성격이 정말 반대이다. 아내는 무척 활발하고 웃음이 많고 사진 찍기 좋아한다. 남편은 늘 과묵하게 옆에 서있다. 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기에 슈퍼에서 샀냐고 농담을 건네니 조금 말을 한다. 열심히 와인 마시는 아내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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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너무 아파 예약한 알베르게를 취소하고 바로 눈앞에 있는 알베르게에 들어갔다. 다행히 자리가 있다고 해서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커뮤니티 공간에 앉아 글을 썼다. 산타마리아 광장도 구경하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일찍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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