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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산티아고

4월 5일 벨로라도

by 하루달

거북이는 느릿느릿 꾸준히 기어간다. 비록 속도가 느리지만 쉬지 않고 성실히 걷는다. 토끼는 잘 뛰지만 쉬기를 잘하는 욜로족이다. 나는 거북이일까, 토끼일까

나는 토끼이다. 귀여운 토끼이다. 새벽 6시에 떠나 오후 4시에 도착한다. (대부분은 오후 2시에 도착한다) 나는 깡충 한 번 뛰고 사진을 찍는다.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을 정신없이 빼앗긴다. 동영상도 찍어 지인에게 보내고 너무 아름다워, 미쳤어, 감탄을 한다. 그 잠깐 10초, 20초 사이에 거북이가 100m 앞서가 있다. 다시 힘을 내어 깡충 뛰지만 절대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나는 다시 뒤를 돌아본다. 절대, 절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꼭 해야 할 일은 자주 뒤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명심해야 한다.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져 있다. 토끼는 황홀하다. 내 뒤에 걷고 있던거북이들은 또 나를 앞질러 간다. 토끼는 음악도 듣고 물도 마시고 잠시 모자도, 선글라스도 꺼낸다. 그런데 다른 거북이들은 걸으면서 물도 마신다. 왜냐하면 물 한 잔 마시는 동안 또 100미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끼와 거북이들은 카페에서 다 만난다. 라테를 마시고 화장실을 가고 다시 출발점이 똑같아진다. 그러니 아무 의미가 없는 경주인 것이다. 여기는 경주가 아니다. 일찍 알베르게에 도착해야 하는 이유는 공립을 가기 위함이요, 한낮의 더위를 피하기 위함이다. 누구를 이기기 위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거북이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 눈에 담아두나 보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취향으로 걸어간다.

그런데 나의 윗세대인 엄마, 아빠는 부지런함, 성실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다. 최현숙 작가의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책에서 새마을 운동 세대의 공교육의 세뇌 교육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나는 그 이후 세대이지만 그 세대의 부모님에게 가르침을 받은 이상 별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나는 너무나 말 잘 듣는 딸이자 학생이었다. 지랄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하지 않나. 나는 말 잘 듣는 모드가 가장 싫다. 평범, 대중화라는 말을 지극히 싫어한다. 남편은 나에게 참 독특한 것만 좋아한다고 한다. 맞다. 나는 누구나 하는 패턴이 극도로 혐오한다(극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평범한 사고를 했다. 나는 아들, 딸이 늦게 일어나는 것에 화가 나기도 하고 빨리 일을 처리하지 않는 지인들에게 짜증이 나기도 했다. 토끼와 거북이 교훈 마인드이다. 이제는 좀 변해야겠다. 어차피 인생은 같은 길이이다. 조금 늦게 취업해도, 조금 늦게 결혼해도, 조금 늦게 집을 사도( 또는 집은 안 사도 된다)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회는 자꾸 토끼와 거북이 교훈을 우리에게 강요한다. 우리는 지금 토끼이기도 했다가 거북이이기도 한다. 그리고 같이 만나서 웃는다. 부엔 까미노를 외치는 모습이 여유롭다. 오늘도 나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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