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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산티아고

4월 7일 부르고스

by 하루달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6시에 알베르게를 나오면 별을 볼 수 있다. 아무리 별자리를 몰라도 북두칠성은 알 수 있다. 한바탕 감탄 세리머니가 쏟아지고 사진으로 간신히 담은 후 화살표를 따라 우리는 또 길을 떠난다. 헤드랜턴을 켜고 캄캄한 시골길을 걷는 중 말 무리를 만났다. 혼자였다면 놀랍지만 무서웠을 것이다. 4명인 우리는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아무리 순한 초식동물 말이지만 한 번 흔든 꼬리에 또는 다리 한 번 들면 커다란 부상을 입을 수 있다. 병원에 어떻게 실려가나, 이 시간에 구급대원이 올 수 있는 곳인가, 우리는 도저히 말 무리 사이를 지나갈 수 없다. 옆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래도 용기 있는 자가 사진을 찍었다. 말조심 표지판도 발견했다.


어제는 소들이 느긋하게 풀을 먹는 모습을 보고 오후에는 염소 가족 30마리가 풀을 먹는 모습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커다란 개들도 주인들과 산책을 많이 한다. 남을 방해하지 않는 자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이 어두운 밤이 조금만 지나면 서서히 밝아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나는 지평선을 만나면 360도 도는 본능이 살아난다. 마치 동그란 지구본에 미니어처가 된 내가 서 있는 느낌이다. 나의 시선을 막는 높은 집, 빌딩, 나무, 가로수가 없다. 순례길이 항상 예쁜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제는 마지막 1시간은 소나무 숲을 걸었다. 우리나라에도 소나무가 많다. 소나무는 고귀하고 꼿꼿하다고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소나무는 사계절 푸르며 피톤치드를 하염없이 내뿜는다. 그러나 높이 서있는 소나무가 지금 나에게는 인상적이지 않다. 그래서 사진을 찍지 않게 된다. 오늘은 부르고스 들어가는 1시간을 대형 창고형 공업지대 같은 곳을 걸었다. 아스팔트가 피로감을 더한다. 그래서 지평선을 발견하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 순간 지구는 나의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가로축으로 360도를 돈다.( 세로축으로 360도를 도는 것은 땅 속을 지나가는 것이라 불가능하다) 해가 조금 떠오르는 지평선에 서 본 적이 있는가. 나의 시선을 가로막는 큰 나무, 도시의 빌딩이 없는 지평선. 시계방향으로 도는 데 빛의 색이 다르다. 주황색이 노란색으로 다시 하늘빛으로 변한다. 마치 하늘의 사계절 같다. 온몸으로 대기와 빛을 흡수한다. 나는 지구의 소유자가 된다. 지구는 나만의 것인가. 무소유와 소유는 같은 것인가 착각을 한다. 탁 트인 풍경은 우리에게 바다처럼 경이로움과 황홀감을 준다. 뭔가를 소비해야 하고, 어떤 정보를 얻어야 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야 하는 세계에서 해방된 느낌이다. 나는 한참을 지평선 멍을 한다.

들판 지평선에서도 뱅글뱅글 돌며 찍은 동영상을 지인에게 보냈다. 미세하게 녹음된 나의 숨소리를 날카로운 감각의 그녀는 캐치한다. 풍경과 함께 감격에 찬 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는 답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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