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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산티아고

4월 8일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

by 하루달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랑 조금 친분을 나누었다. 20대 딸과 아빠가 같이 왔다. 딸은 무척 활발한 성격이다. 외국인들과 잘 어울린다. 아마 아빠가 불안해서 같이 온 건 아닐까 싶다. 국제고 다니는 아들과 엄마가 같이 왔다. 고등학교에서 체험학습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한다. 한창 크는 나이라 아침, 점심, 저녁 가장 잘 챙겨 먹는 것 같다. 외아들은 역시 다르다. 내가 아는 지인도 외아들이랑 친구처럼 지낸다. 사소한 정보를 다 공유하면서. 저 모자도 사이가 참 좋아 보인다. 산악인 중년 부부는 캐나다에서 오로라도 보았다고 한다. 가끔 카페에서 만나면 맥주를 사주신다. 나에게 얼굴에 ‘나성당’이라고 쓰여있다고 농담을 하신다. 냉담을 자주 하는 나로서 부끄럽다. 그저 일주일에 한 번 미사를 볼 뿐이다. 군대를 제대한 아들과 엄마가 왔다. 아들만 둘이고 둘째 아들이 딸노릇을 한다고 한다. 어쩌다가 승현 씨랑 동희님이랑 우리 다섯을 같이 다닌다. 승현 씨는 아, 이제 3주 남았어, 한국 가고 싶어라는 말을 아침마다 한다. 헐, 3주밖에 안 남았다고요, 우리는 하루하루 가는 게 아쉬운데라고 나는 놀린다. 산티아고를 가고 싶어 하는 엄마를 위해 온 효자이다. 겉으로는 툴툴대도 참 착한 아들이다. 동희님이랑 성당에 같이 가면서 말할 기회가 많아졌다. 첫째 아들은 직장에 다니고 생활비도 조금 준다고 한다. 모두 효자들이다. 동희님은 산티아고 순례길이 끝나면 제주 올레길을 또 걸을 거라고 한다. 가을에는 성당에서 가는 로마 성지순례를 간다고도 한다.


그러면 일 년이 다 가겠지

와, 진짜 체력이 좋으시다. 다음 길은 남편분이랑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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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남편 얘기하면 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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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하고 일 년 전에 사별했어요. 갑자기 그렇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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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도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래도 저는 6~7년 돼가는데... 너무 힘드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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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다 울고 가려고요


나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얼마나 아픔이 클까 나는 안다. 나도 너무 힘들어서 정신없이 지내는 삶을 선택했다. 일을 하고 대학원을 다니고 책을 쓰고 살림을 하고 세 가지, 네 가지 일을 하며 슬픔에서 도망가려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동희님도 계속 걸으면서 모든 슬픔을 토해내려나 보다. 부모를 잃은 슬픔, 배우자를 잃은 슬픔 모두 한 번에 절대 버릴 수 없다. 여기다 10퍼센트만이라도 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버릴 수 없다면 계속 생각하며 추억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과거가 있어야 지금이 있다. 한강 작가가 말한 것처럼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 그러고 보니 아들 승현 씨도 잘 먹지 않는다. 군대에 있을 때 비보를 들은 모양이다. 모자가 지금 가장 힘든 시기를 함께 하고 있다. 같이 나누어야 슬픔도 작아진다. 동희님의 어깨가 유독 무거워 보인다. 엄마도 아빠가 돌아가실 때 엄청 힘들어하셨다. 당신 혼자 자식 셋을 결혼시키고 할 일이 많은데 어떻게 하냐고 두려워하셨다. 엄마는 이런 여행도 없이 바로 생활을 하셨다는 생각에 또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이 순례길에는 이런 사연들이 쌓이고 쌓인 길이라는 생각에 한 발 한 발이 경외롭다. 자연이 우리의 마음을 보듬는다. 아무도 모르는 우리의 인생, 그저 지금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하는 수밖에 없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딱 하루 죽을 듯이 힘들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첫날이다. 발카로스 우회길도 마찬가지이다. 생장에서 호기롭게 출발을 해도 징징댈 수밖에 없다. 그다음 날 수비리는 돌산 내리막길만 조심하면 된다. 정확히는 이틀이 좀 힘들다. 한국에서 철저히 준비를 한다고 해도 첫날 기절각이다. 나도 일주일은 순례길 걷는 일에만 충실했다. 20km~28km를 들쑥날쑥 걷는다. 요령도 없어서 일어나는 대로 7시쯤 떠난다. 다행히 더운 날씨는 없었다. 물집 한 번 생기면 난리가 난다. 물집이 생기지도 않은 열 발가락 밴드를 감고 발가락 양말을 신고 두꺼운 양말을 신으니 그렇지 않아도 부운 발 때문에 신발이 작게 느껴진다. 세 발가락에 피멍이 들었다. 오늘은 뒤꿈치가, 다음날은 앞볼이 골고루 돌아가며 아프다. 일주일째 로그로뇨에서 연박을 한 것은 나에게 적절한 선택이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면서 적응도 한 터닝포인트였다. 쉬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로그로뇨에서 다시 만난 한국 사람들과 맛있는 것도 먹고 새벽 6시에 떠나 1~2시에 도착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니 더 적응이 되면서 건강해졌다. 부르고스에서 하루 먼저 떠난 한국인들이 연박 안 하고 떠나냐고 나를 보고 놀란다. 17일이 되니 몸이 적응을 한 것이다. 사람마다 타고난 체력도 있고 환경도 다르지만 비슷한 속도로 몸은 정직하게 변하는 것 같다. 어떤 이는 하루 30~40km도 걷는다. 일로 치면 야근을 하는 것이다. 물론 체력이 좋은 사람은 잘 걸을 수 있지만 다음 날 힘들 수도 있고 피로가 쌓일 수도 있고 경치를 놓칠 수도 있다. 벌써 부상자가 생겼다. 어떤 사람은 엄지발가락이 빠졌다고 하고, 어떤 이는 발목이 부어 종합병원에 버스를 타고 갔다. 의사가 일주일 동안 걷지 말라는 진단을 내렸다. 천천히, 적당히 쉬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나는 이제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마을을 구경하는 여유도 생겼다. 씻고 빨래하고 간단히 요기를 해도 시간이 많이 남는다. 따뜻한 햇살 아래 테라스에 앉아 글을 쓴다. 걷는 시간 다음으로 행복한 시간이다. 낮잠 자는 사람도 많다. 진정한 시에스타이다. 나는 한강 시를 옮겨 적기도 하고 밀리의 서재 앱으로 책을 읽는다. 가족과 통화를 하고 저녁을 먹는다. 어제는 개 두 마리와 염소 한 마리와 순례를 하는 사람이 마을에 나타나 한바탕 재미있게 놀았다. 얼른 알베르게 주방에 가서 빵 두 조각을 가져와 나눠주니 염소가 나만 졸졸 쫓아다닌다. 염소는 뿔이 있다고 개들을 위협한다. 염소는 배낭이 없고 개들만 배낭을 지고 있어 한참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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