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릴 적에는 마른 북어 한 마리를 할머니가 막대로 두드리고 손으로 한 겹 한 겹 뜯어서 끓였어. 로맨티스트 할아버지는 할머니한테만 잘 한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게 다정하셨고 사람을 좋아해 술을 참 많이 마셨지. 다음 날 눈을 흘기면서 내가 못 살아를 외치며 북어를 꽝꽝 두드리고 좀 있으면 진국 북어국이 탄생했지. 요즘은 잘 찢어진 북어가 잘 포장되어 나와서 저런 장면을 상상하기 힘들거야. 깊은 맛 북어국 끓이는 엄마만의 비법은 친할머니한테서 배운 마술의 국물 쌀뜬물이야. 친할머니는 미역국이든 북어국이든 쌀뜬물을 넣으시는 데 은근 깊고 담백한 맛이 나더라. 자른 북어를 참기름 넣고 볶다가 쌀뜬물과 채썬 감자를 넣고 감자가 익을 때까지 끓이다가 진서가 좋아하는 팽이버섯, 어떤 때는 아빠가 좋아하는 채썬 표고버섯을 넣고 국간장와 정종 조금 넣고 더 끊여. 나중에 파와 달걀을 풀어서 살짝 더 끊이면 되지. 엄마는 북어국을 많이 먹고 자라 해장한다는 느낌은 없어. 그런데 너희 키우면서 들은 건강 강좌에서 북어국이 영양가가 많다고, 아이들 아플 때 먹이라고 해서 아빠 해장할 날이 아니어도 참 많이 끓인 것 같다.
오늘은 북어국을 많이 먹게 해준 할아버지가 생각났어. 엄마가 중학생이 되는 첫 생일날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받았지. 손수 쓴 편지에는 여자가 가져야 할 삼씨에 대해 써 있었어. 삼씨는 맵씨, 솜씨, 맘씨 세가지야. 여자는 자신을 늘 가꾸고 행동도 맵씨가 있어야 한다. 여자는 요리나 손으로 하는 솜씨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맘씨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엄마도 지금까지 글자 하나도 안틀리고 기억하는 걸 보면 세뇌당한 것 같아. 예쁜 앞치마만 보면 사는 엄마에게 진서가 말했지. 엄마, 요즘 살림도 안하면서 웬 앞치마냐고. 아, 나에게는 현모양처의 이미지로 살아야 한다는 무의식이 있었고 그 원인은 바로 저 편지였던 거야. 할머니에게 아들 딸 차별을 받아 분명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으면서 한 쪽에는 지워지지 않는 저 편지 때문에 삼씨를 가지려고 노력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다 반박할 것들이네. 세상에나.
그럼 엄마가 진서에게 가지라고 할 삼씨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여자로써가 아닌 인간으로 가져야 할 것은 첫번째는 자기 결정권의 자유를 가지라는 거야. 은근 남의 시선으로 사는 우리는 결정도 남이 하니까 하는 일이 무수히 많아. 자유 중에서 제일 중요한 자기 결정권을 가지는 삶을 살길 바래. 당장 학과를 정할 때도 네가 좋아하는 것을 골랐으면 좋겠어. 취업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도 남의 시선을 생각하는 거야. 내가 전공으로 제대로 공부하려는 것조차 사회의 시선에 의해 정하면 다음은 불 보듯 뻔한 남에게 이끌려 사는 삶 밖에 안 될 것 같아. 두번째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평생하면서 살라는 것이야. 가장 힘든 것은 인간 관계인데 아직도 엄마는 완벽하게 해결하는 비법은 없어 상처를 받기도 하고 이별을 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그래. 그러나 자신이 인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요즘 내가 그들을 존중했는지, 나는 하루종일 존중 받았나 생각해보면 타인과의 관계 속에 답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진서가 스스로 방법을 생각하되 힘들다고 피하지는 말고 늘 사람을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 세번째는 꼭 세가지를 말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생각한 것은 동물이야. 우리는 동물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잖아. 동물과 함께 하는 우리 가족은 동물로 인해 더 행복한 것 같아. 너무나 소중한 동물을 위해 인생을 살자. 다음 생에는 꼭 강아지로 태어나고 싶다는 소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동물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선생님같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대학 들어가라 같이 유기견 봉사 많이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