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고리대금업으로 부자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이 부분을 굉장히 부끄럽게 여기며 자기 혐오를 하고 청년이 되어 공산주의에 심취한다. 그러나 집안에서 공산주의 단체에서 탈퇴하지 않으면 인연을 끊고 경제적 지원도 하지 않겠다고 하자 순수히 받아들였고 다시 한 번 자기 혐오에 빠지고 결국 정신 변동에 들어간다.
소설 <인간 실격>도 자전적 성격을 띤다. 사진 세 장이 책 속의 작가에게 보여진다. 작가는 유년 시절, 청년 시절, 노년 시절의 모습을 한 동일인의 웃는 모습에 묘한 혐오감과 섬뜩함을 느낀다. 그리고 사진의 주인공이 남긴 수기 세 부가 소개된다.
첫 번째 수기는 사진의 주인공 유년 시절 이야기이다. 동북 지방의 시골에서 태어난 요조는 가족이 묵묵히 밥을 먹는 모습을 으스스하게 느끼는 예민한 성격을 가졌다. 공복감을 느낀 적이 없으나 인간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일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에 식사를 하지만 그 말을 협박으로 느끼고 불안함과 공포감을 느낀다. 그렇게 인간과의 관계, 식구에게조차 두려움을 느끼지만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어서 본성과 전혀 다른 웃는 얼굴, 익살의 가면을 쓴다. 남이 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거절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말에 거역하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갖지 못하고 우울함과 긴장감을 마음 속에 숨긴 채 남을 속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속이며 산다.
인간의 삶에는 서로 속이면서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도 입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충만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p.26)
두 번째 수기에는 동북 지방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생활을 하는 청년 시절의 이야기이다. 여전히 가식과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인간이 두렵지만 익살로 학교 생활을 잘 버틴다. 어느 날 반에서 존재감도 없는 친구 다케이치의 한 마디, "너 일부러 그랬지?"라는 말에 본인의 가면이 벗겨지는 공포를 느낀다. 가슴 속에 꼭꼭 눌러 감추고 있는 정체성은 음산한 그림, 도깨비를 그리며 해소한다.
대가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주관에 의해 아름답게 창조하거나 추악한 것에 구토를 느끼면서도 그에 대한 흥미를 감추지 않고 표현하는 희열에 잠겼던 것입니다. (p.40)
화방에서 만난 건달같은 호리키에게 술과 담배, 창녀, 전당포, 좌익 사상을 배우게 된다. 세상의 합법이 두려운 요조는 비합법에 편안함과 자유를 느낀다. 그리고 세상에서 완전히 고립된 같은 처지의 쓰데코 종업원여자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연민, 사랑의 감정을 처음으로 느낀다. 그녀의 한 마디, "겨우 가진게 동전 세 닢 뿐이야?"라는 말에 참을 수 없는 굴욕을 느끼고 같이 바다에 뛰어드나 여자만 죽는다. 자살 방조죄로 검사 앞에 앉아 조사받다가 기침을 요란하게 한다. " 진짜 혈담이야? "라는 말에 다시 모멸을 느낀다.
인간의 마음에는 속을 알 수 없는더 끔찍한 것이 있다. 욕심이라는 말로도 부족하고, 허영이라는 말로도 부족하고, 색과 욕, 이렇게 두 개를 나란히 늘어놓고 보아도 부족한 그 무엇. 저로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인간 세상의 밑바닥에는 경제만이 아닌 묘한 괴담 비슷한 것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p.48)
세 번째 수기에는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가족의 경제적 지원이 끊긴 채 무명 만화가로 근근히 살면서 여러 여자와 동거를 하고 마침내 순진한 처녀 요시코와 결혼을 하였으나 정신병동에까지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언제나 타산적인 계산으로 요조를 대하는, 친구라고 느낀 적이 없는 호리키는 세상이 용납하지 않으니 난봉을 그만 끝내라고 충고한다. 그 세상은 호리키 당신이라며, 세상은 개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제 남이 두려워 복종하던 요조는 조금 달라진다. 조금 멋대로 굴고, 쭈뻣쭈뻣 겁내지 않고 인색해졌다. 자신의 건강을 걱정해주는 순진한 처녀 요시코와 결혼도 하고 인간적인 삶을 꿈꾼다. 그러나 요시코가 순진해서인지 다른 남자에게 강간 당하고 그 장면을 호리키와 같이 목격한다. 인간을 더욱 의심하게 되고 자신감을 잃고 그 때 느낀 난폭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자살기도를 하였으나 살아나고 모르핀에 중독되어 정신병동에 가게 된다.
인간실격 이제 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p.130)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p.132)
나도 어릴 적 배가 고프지 않지만 밥을 먹어야 했고, 내 기분과 상관없이 웃는 얼굴로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법을 배웠고, 공부가 왜 필요한지 모르고 학교를 다녔고, 그것도 아침 일찍부터 야자 시간 밤 늦게까지 학교에 갇혀 있었고, 그래도 반항 한 번 안했다. 어른이니까 독립을 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했지만, 어떤 기준으로 직업을 고르고 나의 권리는 어디까지인지 모르고 직장을 다녔다. 세상의 기준에 맞추며 살기 위해 남들이 모두 보는 책을 읽고, 유행하는 영화를 봤다. 가면인줄 알면서도 가면이 필요하여 쓰고 타인의 가식적인 거짓 웃음에 그렇게 마음 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가면을 벗으려는 사람이 비정상이라고 느끼는 세상이다.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느냐,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아느냐는 말로 무시하거나 비열한 협박을 한다.
합법적인 세상은 누가 만들었는가, 나는 내가 만드나, 타인이 만드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요조가 궁금해 하는 모든 것은 어린 시절 풀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많아 유모의 손에 키워지면서 어머니의 존재는 그에게 미약했다. 아버지는 오히려 싸워야 할 모순 덩어리이며 권력, 공포 그 자체이다. 주변 사람들도 가면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보여주는 위선적인 거짓말쟁이다. 요조는 신뢰가 필요했다. 자신의 가면 벗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믿음직한 존재가 필요했다. 도깨비 그림을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그저 자신의 가면 쓴 모습과 비슷한 나약한 여자들에게 잠시 위안을 얻을 뿐 진정한 신뢰는 아니었다. 그러다 자신을 무조건 믿는 순진한 요시코를 만나지만 그녀 또한 가면을 쓴 인간들에게 농간을 당할 뿐 자신과 같은 약자이지 믿을 수 있는 대상은 아니었다. 어쩌면 이 세상에는 자신을 무조건 믿어주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진실일 수 있다. 그 진실을 안 요조는 세상에 모든 희망이 사라진다. 그것이 진실이었던 것이다. 세상은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고 개인의 욕구를 위해 저 밑바닥에 있는 그 무언가는 꺼내면 안되는 것이었다. 요조의 절망을 안 식구들과 친구들은 요조의 건강을 걱정해 하며 병원에 보낸다. 이것이 아름다운 가면을 쓴 합법적인 세상이다. 그 가면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치는 요조는 인간이 아니라는 판정을 가혹하게 받는다. 그러나 요조는 자신에게 솔직했고 진정한 나를 찾으려고 고민한 용감한 사람이다. 내가 나를 만들 수 없는 세상에서 모두 정상인 양 살아간다. 그리고 비정상이라는 테두리를 만들어 그 불안을 털어내려고 한다. 요조가 그런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나의 가면을 인식하게 되었고 슬픈 위로도 받고 한숨 섞인 아픈 위로를 보내기도 한다. 너무나 본질적이지만 누구나 피하고 싶어하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불안한 현대인에게 자신을 찾으라는 용기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