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
공쿠르 상을 수상한 "자기 앞의 생애"의 작가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의 가명이다. 본명은 로만 카제프이다. 그는 로맹 가리 이름으로 "유럽의 교육", 공쿠르상을 수상한 "하늘의 뿌리", "새벽의 약속" 책을 썼다. "새벽의 약속"은 자전적 소설로 어머니의 위대하고 헌신적인 사랑이 주제인 책이다.
로맹 가리는 리투아니아계(러시아) 유대인 출신이고 유년 시절은 폴란드에서 보내고 청년기는 프랑스 파리 법과 대학에서 공부하고 제 2차 세계대전에는 프랑스 공군으로 참전하여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다. 작가로써 성공하며 프랑스 외교관으로 유엔 대표가 되고 미국으로 건너가 LA총영사가 된다. 노마드 작가인 그는 다양한 문화의 접촉으로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를 장점으로 가지고 있지만 안정적이지 못하고 정체성을 고민하는 분열하고 증식하는 자아를 가지게 된다. 그는 자신을 카멜레온으로 비유하였다. 그리고 여러 가명을 쓰는 행위 또한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지 않았나 싶다.
초록색 양탄자 위에 놓았더니, 초록색이 되었다. 하얀색 양탄자 위에 놓았더니, 흰색이 되었다. 노랑색 위에선 노랑이 되었다. 그 가엾은 카멜레온은 그만 터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터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역시 몹시 아팠다. (p121)
어머니를 위해 내가 벌이려고 하는 모든 투쟁들을, 내가 내 인생의 새벽에 나 자신과 맺은 약속을 생각하였다. 어머니 말이 다 옳았던 것이 되게끔 만들리라, 어머니의 희생에 의미를 주리라, 저들과 당당히 세계의 소유권을 두고 겨루어 이긴 다음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는 약속을. (p.13)
나의 어머니는 그들이 가장 애호하는 장난감들 중의 하나였다. 아주 어렸을 적에, 나는 마음 속으로 그 굴종에서 어머니를 구해내기로 결심하였다. (p.16)
저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한시도 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어머니를 굴종시키는 부조리한 신, 그 신들로 인해 나와 어머니가 겪은 어려운 운명, 약소국, 유대인, 아버지의 부재, 결핍, 가난 등을 뜻한다. 가난 속에서도 억척스러운 어머니는 항상 정오가 되면 나에게 비프스테이크를 주셨다. 어머니 자신은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채소만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비프스테이크를 구운 후라이팬에 남은 기름기를 빵조각으로 긁어 먹는 모습을 보고 열 살인 나는 거의 불구에 가까운 상실감을 느끼면서 행복을 어머니 앞에 바치리라 결심한다.
새벽의 약속은 그렇게 인생의 초창기에서 어머니를 위해 성공하리라 결심한 약속이자 어머니의 기대를 채우기 위한 인생의 선택이었다.
어머니는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문학적 감수성이 남다른 연극배우셨다. 아들이 태어나자 아들 외엔 세상의 무엇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예술적 야망을 아들을 통해 실현하려고 했고 아들은 어머니가 유명한 예술가가 되도록 기꺼이 중개인 역할을 하겠다고 결심한다.
나는 내가 그 이외의 다른 어떤 사명도 갖고 있지 않음을, 내가 어떤 점에선 대리인으로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인간의 운명을 주재하는, 알 수 없지만 공정한 힘이, 희생과 헌신의 삶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천칭의 이 편 접시 위에 나를 던졌다는 것을 항상 알고 있었으므로. (p.46)
" 넌 프랑스 대사가 될 거야"
" 넌 위대한 예술가가 될 거야"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고 예술가들이 대접받는다고 생각하는 프랑스를 어머니는 조국이라고 생각한다.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고 노래, 춤, 마술, 검술,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바이올린을 배운다.
정말로 어머니가 하는 말을 믿는 피키엘라라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어머니들은 그런 것을 느낀다고, 정말 너는 중요한 인물이 될 지도 모른다며 과자를 주는 호의를 베풀고 엄숙하고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또 어머니에게 청혼을 하고 싶어하는 화가 자렘바도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자신이 고아라는 사실과 비교하여 부러워하면서도 질투심이 섞인 마음을 고백한다. 순수한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은 부담스럽지만 나에게 충만한 자양분을 준다. 넘치는 사랑을 일찍 받은 나는 다른 사랑에는 만족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나는 절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마도 누군가의 부재처럼, 그것이 남긴 깊은 상처를 나는 끝까지 영혼에 간직할 것이다. 절대는 불현듯 도달할 수 없는 그것의 현존을 통보하였던 것이고, 그때 이미 나는 어떤 샘을 주어 그 거역할 수 없는 갈증을 달래야할지 알 수 없었다. 예술이라는 그 지고한 실패를 통해, 영원한 자기 기만자인 인간은 비극적인 질문으로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도록 단죄된 것을 대답인 것처럼 만들려 애쓰는 것이다. 최고 걸작에의 갈망이 나를 방문했던 것이며, 아마도 영원히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p. 118)
성공을 해야 한다는 약속은 당뇨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면 볼수록 초초해지고 다급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음악에도, 무용에도, 연기에도 천재와 같은 재능이 없던 나는 때로는 오렌지를 굴리는 곡예를 연습하기도 한다. 예술로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욕망을 가진 그 순간이 나에게는 인간 존엄의 시간이며 아주 소중한 도전인 것이다. 이 부분이 로맹 가리가 가지고 있는 휴머니즘이 아닐까. 그는 자신의 관심사는 오직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의 권리라는 말을 남겼다. 획일화된 전체주의적 독단에 저항을 하고 그가 가지는 슬라브족의 유머와 재치로 비극적인 상황을 인간애가 넘치는 자기 의지로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문학을 선택해 글을쓰기 시작한다.
러시아 은그릇 한 세트를 달랑 들고 프랑스 니스로 온다. 어머니의 은그릇을 소개하는 예술적 연기력에 반한 아르메니아는 동업을 제안한다. 그의 가게에 있는 골동품을 팔아주면 어머니는 커미션을 받는 것이다. 이로써 집을 장만하고 어머니는 일하는 범위를 넓힌다.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돌보는 어머니를 보고 하루라도 빨리 성공하여 어머니의 머리에 월계관을 씌워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희망이 좌절되는 초라한 현실은 희망을 꿈꾸는 것조차 끔찍하게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글을 쓰면서 상상의 인물을 만들어내고 정의와 동정심으로 가득 한 세상을 꿈꾼다. 여자 혼자 아이를 짊어질 필요가 없는 세상, 사회에 관심을 갖는다. 이 부분이 로맹 가리가 주장하는 휴머니즘이다.
나는 인간 전체를 위한 정의에의 갈망에 사로잡혔다. 그 갈망의 육화물들이 아무리 천하고 죄 많은 것들일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 갈망은 마침내, 그리고 처음으로 내가 써야 할 작품의 발치에 던져놓았던 것이다. 그 갈망이 아들로서의 나의 애정에 그 고통스런 뿌리를 두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점점 자라고 커지면서 나의 전 존재를 포박하였다. 마침내 문학적 창조가 내게, 그것이 진정성을 갖는 위대한 순간이면 항상 그러한 바, 즉 견딜 수 없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허구요, 살아 남기 위해 영혼을 회복시키는 방법이 될 때까지. (p.181)
홀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압박감을 느껴 건강하게 독립을 할 수 없는 아들의 책임을 두고 많은 심리분석학자들은 의견을 내놓는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거세 콤플렉스, 항문 컴플렉스, 시체 애호 등. 로맹 가리는 이 정신적인 분석을 1부에서는 "자기 자신이 지닌 도착증의 굴레 속에 우리를 가두고 저만의 분석 원리를 날조해내는 수수께끼 같은 의미의 은어로 교묘하게 자기를 감추고 강제적으로 보호를 해주겠다고 하는 변태적 전체주의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의견을 밝혔다. 프랑스 법과 대학에서는 본인이 심리적 분석 자료에 대상이 된 그 자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자랑스러워한다) 프로이트에게 기꺼이 자료를 보여주는 역설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는 로맹 가리가 가지고 있는 유머의 힘이다. 진정으로 적을 이겨낼 수 있는 힘, 자기에게 닥친 일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의 확인이었다.
그는 시간의 경주를 계속한다. 어머니가 당뇨로 점점 쇠약한 모습을 보이자 초조해진다. 하루에 열 한 시간까지도 글을 쓴다. 스물 두 살이 되도록 병들고 지친 늙은 여인의 노동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이 그를 힘들게 한다. 드디어 단편소설 "폭풍'이 주간지에 실린다. 어머니에게 돈을 받지 않는 짧은 경제적 독립을 한다. 그리고 또 한 번 어머니를 기쁘게 할 기회가 생겼다. 살롱드 프로방스에 징집되어 수습과정을 받고 장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삼백 명이 넘는 수습 장교 중 귀화한 시간이 짧다는 이유로 본인만 하사로 임명되는 치욕적인 사건이 생긴다. 운명의 신은 어머니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 모욕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물려 받은 낙천성과 자아중심주의 사고와 유머라는 무기는 오히려 그 순간을 진정한 프랑스 인이라고 느끼게 한다.
결국 프랑스 인들도 유별난 종족이 아니며 나보다 우월하지 않고 그들 역시 바보 같고 우스꽝스러울 수 있다- 간단히 말하여 명백하게 우리는 형제다, 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p.262)
어머니의 용기 안에 있는 어떤 것이 내게로 옮겨와, 내 안에 영원히 남았다. 지금도 어머니의 용기가 내 안에 깃들어 살며, 절망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내 인생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p.283)
몇 년전 대한민국에서 믿기지 않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초등학생이 친구를 집으로 불러 살해한 일이다. 뉴스에 의하면 5학년 아이는 부모님이 안계셔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었고 친구가 부모님의 욕을 몇 차례 해서 화를 참지 못하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러나 동기가 어찌 되었든 아이가 살인을 한 그 잔인한 행동에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촉법 소년법에 의해 아이가 처벌받지 않는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컸다. 나는 "새벽의 약속" 책을 읽다가 문득 이 사건이 떠올랐다.
로맹 가리도 12살 쯤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몸을 파는 폴란드인이라는 욕을 듣는다. 신체적인 학대와 놀림은 참아도 어머니의 욕은 처음 듣는 거라 로맹 가리는 친구들에게 등을 보이고 달아난다. 집으로 와서 울며 어머니에게 모든 일을 말한다. 비록 12살이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어른처럼 대한다. 차가운 표정으로 변한 어머니는 다음 날 이렇게 말한다. "다시 한 번 그런 일이 생기면, 누군가 네 어미를 네 앞에서 모욕하면, 다음번엔, 사람들이 너를 들것에 실어 집으로 데려오기를 나는 바란다. 지금부터 너는 나를 위해 싸워야 한다. 필요하면 넌 죽기라도 해야 해." 보통의 어머니와는 다르다. 아직 12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가혹하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부조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을 모르고 그냥 살아간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그 사건도 잠시 관심을 끌며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몇 번 언급하다가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두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인가?
로맹 가리는 그 사건 이후 아무리 창피한 일을 당해도, 예를 들어 테니스를 몇 번 밖에 치지 않은 초보자 실력을 스웨덴 국왕 앞에서 테스트를 받을 때, 공을 쫓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수치심을 받아도 달아나지 않는다. 폴란드 장교들이 에즈라 파운드 양을 사이에 두고 모욕적이고 도발적인 행동을 해도 무도한 권투 결투를 벌이지 도망가지 않는다. 프랑스가 독일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투쟁을 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가는 비행기를 찾아 탈영병이라는 오해를 받아도 감행하려고 한다. 비행 중 눈에 폭격을 당한 조종사를 두고 낙하산을 타고 혼자 탈출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그의 눈을 대신하여 목소리로 인도하여 동료와 같이 귀환한다. 로맹 가리가 어머니에게 배운 정의, 인생이 문학임을 실천하는 모습들이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언제나 들린다.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정치적 야망을 위선적으로 포장하는 모사꾼과 휴전을 결정해 안전을 인간조건이라 추구하는 패배주의자들을 증오하고 경멸한다. 로맹 가리는 빅서의 해안에서 느낀다. 같이 전쟁에 참여했던 그들의 모습을, 그들의 목소리를.
나는 빅서의 모래 위에 해를 받으며 엎드려 있고 내 온몸에서 내 뒤에 올 모든 이들의 젊음과 용기를 느낀다. 나는 신뢰를 느끼며 그들을 기다린다. 나는 대양의 소리를 듣는다. 그러면 나는 눈을 감고 미소를 지으며 우리가 모두 함께 이곳에 있음을 알고 있다. 다시 시작할 준비를 갖추고서. (p.364)
"새벽의 약속"을 처음 읽었을 때는 어머니의 열정적이고 지고지순한 사랑에 감동하였다. 어머니의 사랑을 왜곡해 해석하는 전문가들의 오해와 비평을 받았을 때 로맹 가리는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싶다. 탯줄로 연결된 부모의 사랑을 정신분석적으로 해석, 접근 가능한 것인가. 단정짓고 평가해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어머니의 성격과 시대적인 배경도 원인이 되겠지만 이런 사랑을 모두 하는 것은 아니다. 또는 표현과 강도는 달라도 같은 부모의 사랑일 수 있다. 자식도 부모에 대한 사랑을 감사하지만 표현은 다를 수 있다. 로맹 가리는 진정으로 어머니를 사랑하는구나를 느꼈다. 어머니의 대리인이 되겠다는 어린 소년의 다짐과 약속은 순수하며 본능에 가깝다. 소년의 모습이 오래 남아 마음이 아프다.
열렬하고 감동 잘하는 그 소년, 요람에서 들은 동화를 그토록 순진하게 믿고 자기 운명을 멋지게 정복하겠노라 날뛰던 그가 정말 나였을까? 어린아이가 지닌 감수성의 올 하나하나 그 때 남겨진 자국으로 영원히 젖어 있게 되는 새벽의 그 더듬대는 시간에 내 어머니는 너무도 솜씨 있게 너무도 많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내게 해주었고 우리는 너무도 많은 약속을 하였으며 거기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추락이 진정으로 완수된 오늘, 나는 내 어머니의 재능이 오랫동안 나로 하여금 인생을 예술적 질료로 생각하게 하였다는 것을, 사랑하는 한 존재의 주위에 어떤 황금률에 따라 인생을 정돈하려 애쓰느라고 내가 녹초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p.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