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인간
그는 그들을 마지막 만찬에 오도록 했다
(한 발의 총성이 새들을 이삭들로부터
쫓아내듯이) 그는 그의 말로써 그들의 손들을 빵으로부터
쫓아낸다: 손들은 그에게로 날아와
불안스레 원탁을 가로질러 펄럭이다가
빠져나갈 출구를 찾는다. 하지만 그는
황혼의 시간처럼 도처에 있다
최후의 만찬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성당은 빛과 공기와 색으로 공간을 채웠다. 성당 안으로 오후의 포근한 햇살이 들어와 무늬를 만든다. 돌은 무게에서 해방되어 곡선을 이룬다. 천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건축물이다. 스페인에는 돌로 만든 건물이 많다. 성당, 수도원과 도로는 대부분 돌로 만들어졌다. 어떻게 그 시대 이런 건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 어떤 면에서는 경이로우면서도 수많은 사람의 땀과 피가 생각이 나서 마냥 감탄하기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 인간을 사랑한 신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고 생명을 주었다. 인간은 신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높은 성당을 지었다. 누가 더 경이로운 것일까.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제자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한 길을 걷는 것이다. 마지막 도착지 콤포스텔라 성당에는 야고보의 시신이 묻혀있다. 신이 위대한 것인가, 야고보가 위대한 것인가. 나는 인간을 사랑한 신보다 신을 사랑한 인간이 더 존경스럽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을 보고 <최후의 만찬> 시를 지었다. 예수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구세주이다. 인간인 예수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당연히 두려운 마음이 들었고,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운명을 바꾸어달라고 신에게 애원하기도 했다. 릴케는 예수가 복음을 전파할 때 느낀 고독은 제자들과 분리된 고독이며 구세주로 성장하기까지 필연적으로 느껴야 했던 수행과도 같은 고독이라며 재해석한다. 사랑을 받는 것을 거부하고 사랑을 주는 것을 선택한 자는 고독할 수밖에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예술가와 부모의 사랑과도 닮았다. 유다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가 예수를 모른다고 부정하며 죽음을 목격하지 않고 도망쳤다. 그리고 예수가 자신은 죽을 것이고 부활할 것이라는 운명을 들려주는 말도 믿지 않았다. 릴케는 재해석한다. 제자들이 느끼는 불안은 믿음이 부족해서 생긴 감정이 아닌, 절대자 그리스도에게 느끼는 낯선 감정, 내적인 상태이다. 나는 예수를 배신하고 불안을 느끼는 제자들에게 인간적인 면을 보았다. 이 중에 나를 배신할 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웅성대는 모습을 그린 <최후의 만찬>이 다시 보인다. 믿음이 부족하다고 탓하기보다는 절대자에게 느끼는 낯선 불안에 공감이 된다. 나는 아름답고 웅장하게 빛나는 성당 안에서 불안의 감정에 압도되었다. 열두 제자처럼 성당은 경외로운 불안 그 자체를 보여준다. 인간은 누구나 안정을 추구한다. 변화는 두려운 것이다. 그 변화가 바로 눈앞에 펼쳐지면 도망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불안하고 두렵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성당은 너무 아름다워 서글프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무거운 절대적인 침묵이 흐른다. 그 침묵을 마주하고 인간은 늘 망각한다. 그의 애달픈 고독을 느끼는 것은 찰나적이다. 눈물이 차오르는 것은 순간적이지만 가슴 가득히 채우는 시적인 흐느낌임에는 틀림없다.
나에게 지금 종교는 사람들이다. 한국에서 나의 안전을 빌어주는 지인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잘 걷고 있냐는 문자를 많이 받는다. 성당에서는 미사 드릴 때 누군가의 죽음과 치유를 위해 다 같이 기도를 한다. 그때 나는 모르는 누군가에게 형식적인 기도만 했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지 못했다. 나는 지금 기도를 받는 당사자가 되었고 그들의 진심 어린 마음이 느껴진다. 그들이 나의 종교가 되어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 그들과 함께 순례길을 걷는다. 카잔차카스가 말한 것처럼 하느님이란 하느님을 찾아가는 그 행위 속에 존재하는 것 같다.
스페인은 성인을 모시는 성당도 많다. 신이라는 거대하고 두려운 존재보다는 자신들 바로 옆에 있는 성인들에게 더 친근감을 느낀 것이 아닐까. 건축가의 성인으로 알려진 산토 도밍고가 이 마을에 순례자를 위한 다리, 병원, 숙소를 지으면서 아름다운 도시가 됐다.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대성당에는 닭에 대한 신화가 있다. 14세기 이곳 여관에 묵은 독일 청년이 여관 딸의 사랑 고백을 거절하자 도둑으로 몰려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교수대에 찾아간 부모는 "산티아고의 자비로 아들이 살아 있다"라는 성인의 말을 듣는다. 주교는 "당신 아들이 살아 있다면 이 구운 암탉과 수탉도 살아 있겠구려"라며 비웃었다. 그 순간 구운 닭이 살아서 날아갔다는 신화가 전해지고 있다. 성당 내부에 닭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