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거북이
진리를 찾는 자는 두 개의 책을 가져야 한다.
하나는 자연에서, 다른 하나는 자신의 내면에서
(카비르)
거북이는 느릿느릿 꾸준히 기어간다. 비록 속도가 느리지만 쉬지 않고 성실히 걷는다. 토끼는 잘 뛰지만 쉬기를 잘하는 욜로족이다. 나는 거북이일까, 토끼일까. 나는 의외로 토끼이다. 새벽 6시에 떠나 오후 4시에 도착한다. (한국인과 같이 걸을 때는 그들의 속도에 맞추다 보니 오후 1~2시에 도착한 적도 있다.) 나는 깡충 한 번 뛰고 사진을 찍는다.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을 정신없이 빼앗긴다. 풍경 동영상도 찍어 지인에게 보낸다. (나는 똑같은 동영상을 보내기 싫어 한 사람마다 다른 동영상을 보내고 있다.) 그 잠깐 1분, 5분 사이에 거북이들이 백 미터 앞서간다. 다시 힘을 내어 깡충 뛰지만 절대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나는 자주 뒤를 돌아본다.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토끼는 황홀하다. 이번에는 내 뒤에 걷고 있었던 거북이들이 나를 앞질러 간다. 토끼는 음악도 듣고 물도 마시고 구름도 보고 나무도 보고 잠시 그루터기에도 앉는다. 누군가 식물에 관해 설명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다른 거북이들은 걸으면서 물을 마신다. 왜냐하면 물 한 잔 마시는 정지에서 다른 이들과 백 미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끼와 거북이들은 결국 카페에서 다 만난다. 커피를 마시고 화장실을 가고 다시 출발점이 똑같아진다. 여기는 경주하는 곳이 아니다. 일찍 알베르게에 도착해야 하는 이유는 선착순으로 예약되는 공립 알베르게에 가기 위함이요, 한낮의 더위를 피하기 위함일 뿐이다. 누구를 이기기 위함도, 자랑하기 위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거북이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 눈에 담아두나 보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취향으로 걸어간다. 우리는 순례자로 걷는다.
그런데 나의 윗세대인 엄마, 아빠는 부지런함, 성실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다. 최현숙의 책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에서 새마을 운동 세대의 공교육 세뇌 교육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나는 그 이후 세대이지만 그 세대의 부모님에게 가르침을 받은 이상 별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나는 너무나 말 잘 듣는 딸이자 학생이었다. 인생에는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하지 않나. 나는 이제는 말 잘 듣는 모드가 가장 싫다. 제 이의 사춘기, 갱년기의 내 가치관은 오로지 자유와 개성이다. 나는 누구나 하는 똑같은 패턴을 피한다. 그런데도 보이지 않는 틈새로, 확인할 수 없는 구멍으로 토끼와 거북이 마인드가 들어온다. 그래서 세뇌 교육은 무서운 것이다. 나는 토끼와 거북이 경주처럼 순위를 매기는 사고를 하고, 아들, 딸이 늦게 일어나는 것에 화가 나기도 하고, 빨리 일을 처리하지 않는 지인들에게 짜증이 나기도 하고, 절약하지 않는 사람을 한심하게 보기도 했다. 책을 읽어도, 종교를 가져도 나의 세계는 확장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자연에 도움을 청한다. 자연은 넓고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데 온 힘을 쓰고 있다. 봄은 생명의 계절이다. 여기저기 탄생의 기적과 함께 각자 나르시시즘에 빠진 모습이다. 유채꽃을 보고 있으면 입안에 상큼한 맛이 감돈다. 새들의 합창은 순수하게 숭고하다. 푸르름의 농도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던 자연은 인간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아간다. 아버지와 이십 대 딸이 열심히 걷는다. 고등학생 아들과 어머니가 씩씩하게 걷는다. 어머니와 갓 제대한 아들이 성실히 걷는다. 산악인 부부가 빠르게 걷는다. 네 번째 순례길을 걷는 사람과 열네 번째 순례길을 걷는 사람이 만나 웃는다. 일 년에 일주일만 순례길을 걷는 프랑스 가족도 있다. 이처럼 개별적인 세계에서 나는 뻗어나가지 못하고 웅크리는 데 온 힘을 쓰고 있었다. 길 위의 봄은 나의 마음이 펴지게 하고 있다. 나는 토끼도 거북이도 아니라는 사실을 감각으로 인지한다.
티론 강의 에브로 계곡에서 고원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통제하기 위해 로마 시대에 정착하여 구시가지는 좁고 구불구불한 거리가 형성되었다. 중세 시대에 순례자들이 머물면서 도시로 성장하였다. 매년 페리아 알폰시나 축제가 열린다. 순례자들이 일 년 내내 끊이지 않는 마을이다. 조용한 도시에는 이천 명이 넘는 시민들이 살고 있고 마요르 광장에 가면 도시의 규모를 느낄 수 있다. 중세 아케이드가 있는 상점과 카페와 순례길 물품을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서 있다. 한때 가죽 공업이 유명했던 벨로라도에는 절벽 위에 있는 성터, 고대 동굴 암자, 산타 마리아 성당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