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
오늘은 침대에 누워 앱으로 소설을 들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소설인데 다르게 느껴진다. 전혀 공감되지 않아 듣기를 멈췄다. 이상하다. 그새 나는 공감 능력이 떨어진 것인가. 겨우 이 주일 외국에 있다고 사람이 이렇게 가벼운 갈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소설은 한국에서 젊은 세대들이 겪는 실질적인 이야기이다. 나도 겪었기에 가슴 아파서 눈물도 흘린 이야기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왜일까. 나는 이야기에 공감한다. 공감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나는 계속 읽기를 선택하지 않을 뿐이다. 공감은 하나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뭔가 힘이 생긴 것 같다. 아픔을 공감하지만, 그 아픔을 이겨낼 힘이 생겨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겨낼 힘은 무엇인가.
나는 미니멀리즘이 되었다. 친정엄마, 아빠가 계시지 않으니 내가 가진 가족이 미니멀리즘이 되었다. 엄마를 통해 전해 듣고 만나던 이모, 외삼촌 가족의 이야기가 잘 전해지지 않는다. 아빠를 통해 늘 만나던 작은 아빠들과 고모의 소식도 거의 모른다. 형제자매들도 예전만큼 만나지지 않는다. 오로지 내가 꾸린 남편, 아들, 딸, 반려견 가족의 구성원만이 진정한 가족이 되었다. 나의 정체성은 외로움이다. 고명딸로 언니, 여동생이 없어 자랄 때 외로웠다. 남동생이 언제까지 인형 놀이, 소꿉놀이를 해줄 수는 없었다. 나도 필사적으로 오빠, 남동생을 따라다니며 놀았다. 내가 지금 체력이 좋은 건 그 덕분이라 짐작한다. 그래도 여자 남자 성향이 다르다. 점점 그들과 멀어지면서 나는 학창 시절에 단짝 친구들이 생겼다. 나는 그들과 이별해야 하는 상황에 남들보다 더 큰 외로움을 느끼고 상처를 받은 것 같다. 영원한 인연은 없다는 걸 배웠는지 대학생 이후부터는 사람을 깊게 사귀지 못했다. 영원히 곁에 있어야 하고, 나만 바라보는 관계를 이상적인 우정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집착하지 않는, 배려가 있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관계는 오래갔다. 시몬 베유 철학자는 친밀함과 거리두기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모호함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인간관계도 어느새 미니멀리즘이 되었다. 채우지 않고 비우게 된 것이다. 죽음과 이별을 경험한 나는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조금 알게 되었다. 나에게 강요한 쓸쓸한 고립과 쓸데없는 욕망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채우려는 행위는 결여가 만들어낸 감정에 집중하게 된다. 모자란 것을 메워야 한다는 생각은 욕심, 고통, 두려움을 만든다. 영원한 것은 없다. 또 많은 것이 없어도 된다. 그럴수록 가장 적은 것에 행복을 느끼게 된다.
순례길에서 나의 배낭은 언제나 6kg을 유지한다. 물건을 사면 내 어깨만 아플 뿐이다. 나의 몸은 더 간결해진다. 먹고 씻고 입고 자는 것에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 쓸데없었던 욕망은 사라진다. 망토를 두르고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트럭 바 호스트는 걸음에 지친 우리에게 달콤한 웃음을 주었다. 어떤 이는 기꺼이 그와 손을 잡고 춤추고 어떤 이는 수줍어 웃기만 한다. 춤은 악기라는 도구가 필요 없어 좋다. 지친 나에게 춤이라는 미니멀리즘이 다정함을 안겨주었다. 나무도 길게 뻗은 가지를 흔들며 한꺼번에 춤을 춘다. 쏴 하는 소리가 들린다. 가지 틈 사이로 햇빛이 반짝인다. 나는 걸으며 단 하나의 숨으로만 남는다. 가진 것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싶다. 나는 글을 쓸 것이다. 모든 아픔에 공감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선택하지는 않겠다. 아픔을 함께 이겨내는 춤을 선택하겠다. 소외된 감정을 찾아가 함께 이겨내고 싶다.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에는 '죽은 자를 위한 기념비'가 있다. 스페인 내전 당시 전사한 이들을 기리는 기념비이다. 스페인 내전은 한국전쟁과 비슷한 면이 있다.
1차 세계대전 때 스페인은 중립을 선포하여 전쟁 특수를 누렸지만, 물가가 올라 국민은 총파업하고 공산당이 창당된다. 리베라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는다. 세계 경제공황이 일어나고 공화정에서 중도 우파, 다시 좌파, 극우 파시스트 팔랑해 조직이 탄생하는 격변의 시기를 거친다. 프랑코는 쿠데타를 일으켜 국민전선을 만든다. 보수파와 공화파는 내전을 일으킨다. 이는 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었다. 무솔리니의 파병으로 마드리드가 포위되고 바르셀로나가 점령된다. 독일 나치는 게르니카를 공격한다. (피카소는 '게르니카' 그림으로 참상을 알린다.) 이에 각국의 젊은 지식인들이 국제여단을 만들어 내전에 참전한다. 헤밍웨이, 조지오웰, 피카소 등 십만 명이다. 그러나 프랑코가 승리하고 삼십칠 년간 집권한다. 2차 세계대전에는 중립을 지키고 아르헨티나의 도움을 받고 공산주의 배척으로 미국의 지지를 받아 점차 국권이 회복된다. 유엔에 가입하고 교회의 지지를 받는다. 프랑코는 후안 카를로스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국민은 그가 자연사할 때까지 저항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