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혼자
우리는 결국 혼자라고 말한다. 시작부터 혼자 태어났다. 그럴 리가. 물론 혼자 힘으로 엄마 자궁에서 나왔지만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 이모, 의사, 간호사, 이웃의 관심과 사랑으로 태어나 발가락, 손가락, 눈, 코, 입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는 등 지극한 관심을 받고 인생을 시작했다. 인간은 결국 혼자 죽는다고 말한다. 그럴 리가. 물론 언제 죽는지, 나이순도 아니라 아무도 모르지만, 가족이 있는 집에서 또는 혼자라도 누군가가 발견한다. 그리고 사흘동안 아는 사람들이 모두 와서 슬픔을 나눈다. 그리고 마음속에 기억하고 일 년에 한 번 제사를 지내며 또 기억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배우자가, 자식이 없어도 사랑하는 가족이, 친구가 반드시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혼자 온 사람이 많다. 자발적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우리는 걷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같이 있다. 결코 혼자가 아니다. 물론 혼자 밥을 먹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눈에 들어오는 한 간단히 인사도 하고 괜찮은지 서로 살핀다. 걸을 때는 아무도 긴 말을 건네지 않는다.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은 7~8시간가량이다. 그 시간은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다. 내면의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그리고 나는 알베르게에 돌아와 자연의 언어를 글로 기록한다.
나는 혼자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왜 혼자를 두려워할까. 최초의 외로움을 떠올려본다. 초등학생 때 소풍을 가기 전날 친한 친구와 싸웠다. 왜 싸웠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친구는 같이 다니는 친구들을 바로 포섭했다. 그 어린 나이에 정치적 능력을 갖췄다. 소풍 가서 나만 혼자가 되었다. 처음으로 혼자 앉아 김밥을 먹었다. 그때 나는 어떤 마음이었나. 우선 친한 친구와 싸워서 화가 났었고 다른 친구들의 배신에 서운했고 남들이 왜 혼자 먹느냐고 물어볼까 부끄러웠다. 혼자 밥을 먹는 행위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혼자인 사람은 성격이 좋지 않고 사회성이 떨어지고 등등 부정적 이미지가 그때는 있었던 것 같다. 요즘은 혼밥, 혼술, 혼자여행을 해봤냐고 물어보고, 도전 사항까지 되었다. 자발적 혼자를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부러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 나는 용기가 없었고 그 부끄러움, 수치심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 이후 나는 그래도 잘 살았다. 별다른 사건은 없었는데 감정은 참 오래 우리를 지배하는 것 같다.
나는 지금 자발적 혼자를 선택했다. 혼자 여행을 하기는 처음이다. 또 혼자 밥을 먹기도, 혼자 술을 먹기도 처음이다. 혼자가 두려우면서도 왜 선택을 했을까. 지금 수많은 정보와 책임감, 해야 할 일로부터 멀어져 있다. 자발적 혼자는 그것들과 멀어지기 위함이다. 또한 용기와 자유를 찾기 위함이다. 알베르게에서 재미있는 글을 봤다. 한국인인데 무언가를 찾고 변화하기 위해 왔는데 두 주일이 지난 지금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며 될 놈은 여기 오지 않아도 되고, 안 될 놈은 여기 와도 되지 않는다는 글이다. 맞다. 자발적 혼자가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않는다. 극적인 변화는 없다. 그런데 저 사람은 그동안 자신을 처음으로 깊게 관찰하고 겸손을 배운 것이 아닐까. 변했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삶은 드라마가 아니다. 나는 변했을까. 방해받지 않아 행복을 느끼지만 여전히 자발적 혼자를 완전히 즐기지는 못한다. 그 정도이다. 그런데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혼자라는 외로움은 결국 자기에 빠진 생각이고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 착각이었다.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타자가 정말 실존하는지 생각해 본다. 만약 외로움을 느낀다면 타자를 찾아가면 된다. 나도 혼자가 아니고 당신도 혼자가 아니다.
아타푸에르카는 백만 년 전부터 거주한 원시인류, 네안데르탈인의 유적, 석회암동굴이 발굴된 곳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땅의 자연과 지형학적 위치와 역사는 그 땅에 사는 인간을 만들어간다. 스페인 북쪽 칸타브리아는 크로마뇽의 알타미라 동굴벽화가 있는 곳으로 스페인 생명이 잉태된 자궁과 같은 곳이며 스페인의 뿌리, 유럽의 뿌리이다. 북쪽은 지중해 중심의 문명에 소외되고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들어가서 산 곳이었다.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한 곳이고 이슬람을 물리치고 국토 회복을 시작한 곳도 이곳이다. 즉 신앙과 영성의 땅이다.
부르고스는 카스티야 왕국의 초기 수도였다. 인류 진화 박물관, 부르고스 박물관, 산타 마리아 아치형 문, 엘 시드 동상, 마요르 광장, 부르고스 고딕 대성당이 있다. 문화의 도시이자 경제의 도시이다. 밀을 주고 생산하는 부유한 도시이다. 이사벨 여왕이 콜럼버스를 맞이한 곳이 카사 델 코르돈이다.
대도시 공립 알베르게는 가볼 만하다. 도시에서 지원을 해주니 시설도 서비스도 훌륭하다. 부르고스 공립 알베르게에 일찍 도착했다. 바로 앞 바에서 사람들이 배낭을 옆에 두고 맥주를 마시고 있다. 오픈이 두 시라고 한다. 삼십 분가량 남았다. 나는 스틱과 배낭을 문 앞에 놓았다. 서서히 사람들이 내 배낭 뒤에 배낭과 스틱을 둔다. 줄이 되었다. 나는 첫 번째로 들어가 방을 배정받았다. 오후에는 부르고스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무슨 말인지 몰라도 감동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