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를 건너서 숲으로,4월의 산티아고

우리 모두 독립이 필요해

by 홍지현

순례길이 끝나면 여름에는 제주도 올레길을 걷고 가을에 는 로마 성지 순례를 계획하고 있어요, 그러면 일 년이 다 가겠죠?

와, 진짜 체력이 좋으시다. 올레길은 남편분이랑 가세요?

저 남편 얘기하면 울어요

네?

일 년 전에 사별했어요. 퇴직하자마자 갑자기 그렇게 됐어요

아.... 저도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래도 저는 6~7년 돼가는데.... 지금 너무 힘드시겠어요

여기서 다 울고 가려고요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아픔이 클지 짐작하기 때문이다. 나도 엄마가 돌아가시고 너무 힘들어서 정신없이 지내는 삶을 선택했다. 일을 하고 대학원을 다니고 책을 쓰고 살림을 하고 세 가지, 네 가지 일을 하며 슬픔에서 도망가려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다. 여사님도 쉬지 않고 걸으면서 모든 슬픔을 토해내려나 보다. 부모를 잃은 슬픔, 배우자를 잃은 슬픔, 상실의 슬픔은 절대 한 번에 버릴 수 없다. 여기다 아주 조금만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엄마도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무척 힘들어했다. 당신 혼자 자식 셋을 결혼시켜야 하는데 어떻게 하냐고 두려워했다. 엄마는 이런 위로의 시간도 없이 바로 생활했다는 생각에 새삼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부재와 상실이 주는 결과적인 영향에만 신경을 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만 관심을 둔다. 더 중요한 것은 남겨진 자의 감정이다. 이런 인식을 하지 않아 우리는 늘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산다. 이 길을 걷는 시간은 감정을 풀어놓고 바라보는 치유의 과정이다. 순례길은 이런 사연들이 쌓이고 쌓인 길이라는 생각 하니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숭고함이 느껴진다. 길에는 지나온 숱한 삶의 불꽃과 역사가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우리의 인생이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현재를 행복하게 살자고 다짐한다.


여사님의 아들은 디지털에 익숙하니까 길 안내, 알베르게 예약, 배낭운송 서비스를 담당한다. 여사님은 요리를 담당한다. 혼자 온 젊은 남성 한국인도 매번 요리해서 먹는다. 마라 가루를 발견하면 마라탕도 해 먹고 쌀을 발견하면 밥도 지어먹는다. 자취생에게 음식은 자신을 위한 것이다. 나에게 요리란 나를 위한 식사가 아닌 가족을 위한 의미가 더 크다. 나는 혼자 와서 엄마 역할이 없다. 따라서 요리를 거의 하지 않는다. 엄마들에게 요리는 자식, 가족을 위해 하는 사랑의 요리이다. 자식이 나이가 어리거나 많거나 요리는 엄마의 본능에 가깝다.


우리나라는 스무 살이 되면 갑자기 어른 대접을 하고 의무를 준다.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용돈을 벌고, 스스로 책임을 지라고 한다. 아이들은 준비가 되었을까. 중, 고등학생 때부터 스스로 인생을 고민하고 선택한 아이들은 자연스레 어른의 과정을 밟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걸 부모가 선택하고 그저 문제집만 열심히 푸는 아이들은 어른이 되는 과정이 힘들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부모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모든 걸 다 결정하고 참견하던 부모가 갑자기 자식에게 손을 놓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부모도 자식에게 독립할 준비가 필요하다. 어느새 아이들과 나의 위치가 바뀌어졌다. 대학생이 된 아이들은 나를 걱정하고 심지어 가르치기도 한다. 어떨 때는 당혹스럽기도 하다. 남편은 그 상황이 낯선지 아이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스스로 정보를 찾는 수고를 한다. 주변에는 자식에게 부탁하면 너무 시간을 끈다며 치사하고 아니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서서히 위치가 바뀌고 있다. 여사님은 아들이 하자는 대로만 한다. 여사님이 아들에게 너무 의존하기에 나는 왓츠 앱으로 알베르게 예약하는 방법, 닌자 앱으로 길을 찾는 방법 등을 알려주었다. 여사님도 혼자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응원했다. 오늘은 여사님이 나를 위해 용기를 내어 혼자 힘으로 라테를 주문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라테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다가 멀리 보이는 염소 떼들을 구경하러 갔다. 혼자 오신 다른 여사님은 아들이 모든 알베르게를 예약해 줘서 혼자 씩씩하게 다닌다. 우리는 이제 부모의 역할에서 독립할 시간이 되었다. 독립은 자식을 돌보는 것에서, 자식에게 돌봄을 받는 것에서도 벗어남이다. 힘든 양육의 시간에서 벗어나다니 얼마나 기다렸던 시간인가. 오로지 나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동안 시간이 흘러 세상은 변했지만 우리 부모들은 잘할 수 있다. 부모들도 독립을 잘해야 한다. 아이들도 믿고 나 자신도 믿어야 한다.



로마 시대와 서고트 시기부터 요새로 만들어진 도시이다. 882년 전쟁이 시작되면서 요새로 피난하면서 도시는 커졌고 국토회복운동의 중추 역할을 했다. 마을에 들어올 때부터 눈에 띄는 언덕 위의 성에 올라갔다. 요새는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전쟁하던 곳이었다. 대지진으로 방치가 되어 있는데 꼭대기에서 메세타 평원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오리온 알베르게에서 비빔밥, 라면, 김밥 등을 먹을 수 있다. 한국인 순례자들로 북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