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를 건너서 숲으로,4월의 산티아고

나의 글쓰기

by 홍지현

순례자들의 일상은 매일 똑같다. 새벽이나 아침에 눈을 뜬다. 도미토리룸에서 잔 순례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짐을 싼다. 화장실을 이용하고 간단히 과일을 먹고 길을 떠난다. 오늘 걸을 길을 앱 지도를 켜서 보고, 지상의 조개 표시와 화살표를 따라 걷는다. 만나는 순례자들에게 따뜻한 미소와 인사말을 건넨다. 몇 시간 후 나타나는 바에서 따뜻한 커피와 토르티야를 먹고 화장실을 이용한다. 또 걷는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황홀감에 빠진다. 사진도 찍는다. 동행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대화를 즐긴다. 다시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바에 들어간다. 갓 갈아 나온 오렌지 주스와 따뜻한 빵을 먹는다. 또 길을 걷는다. 숙소 알베르게가 나타나면 여권을 보여주고 신원확인을 한 후 방을 배정받는다.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씻고 입었던 옷을 빨고 마당 빨랫줄에 넌다. 날씨가 좋으면 마당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거실에서 쉰다) 힘이 남아 있다면 마을을 구경하기도 한다. 시에스타 시간이 끝나는 오후 5시에 동네 마켓에 가서 저녁거리를 사 와서 간단히 요리하거나 근처 레스토랑에서 식사한다. (정식 요리는 8시에 있다. 그전에는 타파스 같은 간단한 요리만 있다.) 알베르게에서 저녁을 주는 경우는 대체로 7시가 식사 시간이다. 내일 묵을 알베르게를 예약한다. 일기를 쓴다. 가볍게 스트레칭하거나 발 마사지를 하며 몸을 푼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다가 잠든다.


이제는 눈을 감고도 짐을 쌀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여행을 떠나기 전 두렵기만 했던 알베르게 예약도 손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카페에서 하는 주문도 자연스럽다. 똑같은 삶이 싫어서 여행을 왔는데 나는 순례자의 일상이라는 똑같은 패턴으로 살고 있다. 그런데 다른 점은 이 일상이 지겹지가 않다는 것이다. 매일매일 행복하고 하루가 가는 것이 무척 아쉽다. 이유는 무엇일까.


<베갯머리 서책>을 쓴 세이 쇼나곤은 소소한 것들에 대한 사랑에 매료되어 글을 쓴다. 대단한 철학자도 권력자도 아닌 궁녀가 궁에서 지내면서 반복되는 일상에서 남긴 글이 왜 현대인에게 특별하게 다가올까. 그녀는 여행자의 눈으로 일상을 관찰했다. 나도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본다. 사회에서 정해준 일상이 아닌 내가 선택한 일상이다. 나는 이 일상을 스스로 선택하고 기꺼이 즐기고 있다. 주어진 일상은 일상을 사는 현재에만 몰입한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서야 과거의 흔적을 볼 수 있고 나중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평가한다. 나는 현재에 나의 서사를 바로 볼 수 있고 바로 가치를 부여한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많지 않아 이성이 아닌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나의 삶을 타인에게 이양하지 않았기에 나만을 위해 살 수 있다. 시시포스처럼 똑같이 반복되는 시간이 싫지가 않다. 기꺼이 돌을 가지고 언덕으로 올라온다. 돌을 구르는 내일을 오히려 기다린다. 영원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끝을 알고 있기에, 한계가 있는 일정표를 알기에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아닐까. 영원히 할 수 있다는 장담은 거짓일 것이다. 사십 일이라는 주어진 시간이 있기에 아껴먹는 케이크를 먹듯 한 입 조금씩 음미하면서 지낸다. 나는 자유의 허기를 채우고 있다. 여행의 즐거움은 한계라는 점에서 오는 감칠맛일 것이다. 아름다움을 가장 강렬하게 느낄 때는 익숙한 것이 낯설게 보일 때라고 한다. 평범한 사물을 사진으로 찍으면 달라 보인다. 사람들은 그 흔한 커피도 포스팅한다. 공간적으로 다른 곳에 있는 낯섦이 나를 설레게 하는 매력적 요소이다.


오늘은 볼거리가 많은 대도시 로그로뇨에서 연박을 하며 관광객처럼 돌아다녔다. (물론 순례자 옷을 입고,) 예쁜 카페에서 라테와 샌드위치를 먹고 사람들을 구경하고 벤치에서 오랜 시간 글을 쓰고 오은의 시집도 읽었다. 등산 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색다른 첫 일상이다. 박연준 작가는 글쓰기가 나이가 들어도 위로받고 치료가 되는 든든한 보험이라고 했다. 그 작가가 보험이라는 단어를 썼으니 나는 글쓰기를 언니라고 표현하고 싶다. 나는 언니, 여동생 친자매가 없다. 언니는 나에게 로망이다. 자매끼리 밥 먹듯이 싸움한다는 것도 들어서 안다. 너무 닮아서, 가까워서 싸우지만 결국 모든 것을 품는 것은 언니다. 품는 존재는 엄마도 있지만 엄마의 품은 인간 세계의 사랑이 아니고 너무 이상적이고 희생적이라 품는다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내 글쓰기는 딱 언니 같은 것이다. 내 고민을 들어주고 치료를 해주는 내 크기보다 조금 더 큰 언니이다. 남편에게도, 친구에게도, 자식에게도 하지 못하는 모든 말,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언니에게 솔직하게 할 수 있다. 혼내기도 하지만 묵묵히 들어주는 나를 잘 아는 언니이다. 나는 언니가 생겨 든든하다. 김애란의 소설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에서 불면증 이야기가 나온다. 내 주변에서도 갱년기 때문에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은 생각할 일이 많고, 할 일이 많아서 불면증이 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할 일이 적어서 불면증이 오는 것 같다. 오십 대는 크게 걱정할 거리가 없다. 자녀를 다 키웠고 사회적으로도 조금 안정적인 위치에 선다. (물론 아픈 곳이 늘어나지만,) 양육할 일이 없어 빈 둥지 증후군에 걸리기도 한다. 몰입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삶은 느닷없이 물결친다. 엄격하다가 너그럽다. 알베르 카뮈는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하기에는 십 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요동치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정신을 집중하는 호흡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나는 글을 쓰며 나의 영혼에 귀 기울인다. 아직도 공부할 것이 많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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