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를 건너서 숲으로,4월의 산티아고

지평선의 감각

by 홍지현

나는 태어나서 이토록 광활한 지평선을 처음으로 봤다. 더운 나라에 사는 사람이 추운 지역으로 와서 눈을 처음으로 보듯 도시에만 살았던 나는 내 눈이 볼 수 있는 한계에서 가로선이 끝도 없이 이어진 지평선을 처음 보고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탁 트인 공간은 바다처럼 경이로움과 황홀감을 준다. 나의 시선을 막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집도 빌딩도 산도 높은 나무도 없다. 뭔가를 소비해야 하고, 어떤 정보를 얻어야 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야 하는 세계에서 완벽하게 해방된 것 같다. 마치 동그란 지구본에 미니어처가 되어 홀로 서 있는 느낌이다. 나는 나를 중심으로 가로축으로 360도를 돈다. 같은 하늘색이 하나도 없다. 주황색이 노란색으로 변하다가 보라색으로 물들었다가 핑크빛이 섞인 오묘한 하늘빛으로 변한다. 마치 하늘에도 사계절이 있는 것 같다. 빙글빙글 돌며 온몸으로 대기와 빛을 흡수한다. 나 혼자뿐인 공간에서 나는 고독을 느낀다. 외로움은 타인으로부터 차단당한 수동적 감정이고 고독은 스스로에게 침잠하는 능동적 감정이다. 나는 정제되고 또 정제되는 것 같다. 하늘빛이 바뀔 때마다 무에서 유가 되는 순간에 서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없는 존재였다가 태어났다. 우리는 살다가 없는 존재가 된다. 지평선에서 빛이 들어오는 순간이 영원의 시간이다. 나는 아무것도 닮고 싶지 않은 무의 상태가 된다. 무는 절대만큼 닿을 수 없는 경지이다. 태양과 바람만이 유한하다. 끝없이 펼쳐진 광야에서 펼쳐지는 빛의 소란스러움, 멀리서 불어오는 태초의 바람, 길게 뻗은 나의 그림자는 어느새 자연의 시 속으로 들어간다. 나의 눈과 귀는 자연 속에 빠진다. 마음 가는 대로 감각은 춤춘다.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정지용의 시 <춘설>처럼 햇살이 뜨겁게 이마에 먼저 닿는다.


자갈을 밟는 소리가 지긋하게 들린다. 나는 나의 발걸음에 주목한다. 나의 숨소리에도 귀 기울인다. 경청은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행위에서 나의 소리에만 귀 기울이는 행위로 바뀐다. 고요함 속에 펼친 내 생각은 다양한 빛을 가진다. 친절한 자연을 만난 이곳이 나의 공간이 된다. 나의 아틀리에, 나의 도서관이다. 오로지 나 혼자만 품을 수 있는 곳이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내가 나에게 보내는 대화는 나직하고 완벽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자연은 스스로 자신을 만든다. ‘자연스럽다’라는 말은 '꾸밈이나 억지가 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데가 있거나 본래 그대로의 특성이 있다'로 정의한다. 나의 본성 중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저절로 생겨나기 위해서는 용기와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만큼 효율적인 편리함도 있다. 그러나 편리함에만 기대다 보면 나의 본성과 독립성을 잃게 된다. 사회가 요구하는 행복의 가치가 나에게 필터 없이 만들어져서 나는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욕망하고 해롭지 않은 것을 쓸데없이 두려워했다. 존재하는 데서 오는 순수한 행복을 잃었다. 시간에 대한 너그러운 태도를 잃었다. 조급함은 목적과 수단을 헷갈리게 만든다. 행복은 확장되지 않고 수축했다. 나는 천천히 걸으면서 순식간에 지나가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있다. 실수가 용납되고 기꺼이 길을 잃는 자유는 자연을 닮았다. 나는 내 마음을 길에 활짝 펼쳐 놓는다. 초록은 넘치고 넘쳐 땅 위를 기어다니고 서로를 넘는다. 다양하고 친절한 언어가 가득 찬 공기 안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자연 속에서 나를 버리고 다시 나를 만난다. 나는 이곳에, 사랑에 빠졌다.



18세기 카스티야 운하는 스페인 내륙에서 북부 항구로 상품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카스티야 운하는 팔레시아, 부르고스, 바야돌리도 지방을 가로지르는 길이 이백 km가 넘는 인공 수로로 여러 강이 이어져 있다. 철도가 건설되면서 운하는 단계적으로 중단되었다. 양쪽으로 나무가 펼쳐지고 그 안으로 수로가 있어 아름다운 광경이 이어진다.


11세기 지어진 산 마르틴 성당은 단순한 선으로 건축물과 내부 장식에 조화로운 균형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1066년에 스페인 북부를 통일한 최초의 왕 산처 엘 메이어의 미망인 도나 메이어에 의해 설립되었다. 수백 개의 기둥과 대들보에 식물, 동물, 인간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성경의 이야기를 상징으로 새긴 것이다.


저녁에는 성 베드로 성당에서 열리는 순례자를 위한 음악회에 참가해서 플루트 연주를 들었다. 여러 악기가 어우러지지 않은 한 사람이 연주하는 플루트는 아침에 본 지평선과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