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십자가
밤새 눈이 왔다. 눈이 소복이 쌓인 설산 속에서 아침을 맞았다. 다른 알베르게에 있는 한국인들이 카톡을 보냈다. 피레네산맥을 걷다 저체온증으로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뉴스를 전하며 같이 택시를 타고 내려가자고 한다. 나는 옆에서 준비를 하는 외국인에게 이렇게 눈이 왔는데 위험하지 않을까 물었다. 그들은 고속도로는 눈이 아주 깨끗하게 치워있을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그들을 보며 용기를 냈다. 어제 올라올 때도 비가 내렸지만 춥지 않았다. 그런데 눈이 무척 많이 내려 저체온증에 걸릴 수도 있다. 나는 바지 두 개를 입고 티셔츠도 세 개 겹쳐 입고 경량 패딩, 아우터, 판초 우의, 가지고 있는 모든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출발했다. 스페인 공무원들도 한국 공무원만큼 부지런하다. 아침 여섯 시인데도 고속도로의 눈이 말끔히 치워져 있다. 순례자들은 좌측통행으로 줄지어 조심조심 걸었다. 곧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자욱한 안개가 걷히는 찰나에 저기 아래에 있는 마을이 마법처럼 나타났다. 하얀 눈으로 덮인 배경 속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초록 산맥과 파란 하늘, 알록달록 마을은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다시 미풍으로 커튼이 닫히듯 마을이 사라졌다. 몇 분 후 다시 커튼이 열려 푸르름이 나타났다. 드론으로 찍은 영상으로만 보던 산맥과 마을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보다니 마치 신이 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눈사람처럼 길 위에 서서 사진과 눈으로 풍경을 담으며 택시를 안 타고 용기를 내길 정말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했다. 추억은 감각으로 익힌 것을 더 오래 기억할 것이다. 높이가 5m인 철의 십자가가 보인다. 이곳에 돌 하나를 던지면 걱정거리 하나를 던져버리는 것과 같다는 전설이 있다. 눈에 덮여 있어 가까이 가기에 위험했지만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려고 용기 내어 가까이 간다. 내가 던질 돌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나는 친정이 사라졌다. 부모님이 안 계시니 남매인 우리들은 만나기가 쉽지 않다. 엄마가 안 계신 명절이 다가오면 쓸쓸한 고요가 마음을 가득 채웠다. 엄마를 잃고 내가 흘리는 눈물은 어떤 의미인가. 엄마는 작별 인사도 없이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이안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우리는 모두 작별 인사 없이 헤어진다는 말이 나온다. 받아들이는 사람으로서는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할 수가 없다. 우리는 이별 앞에서 안타깝고 또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나는 후회의 눈물을 많이 흘렸다. 더 잘해드리지 못한 일만 생각이 나서 아쉬움이 컸다. 그런데 나를 위한 눈물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행동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이기적이다. 모두 내가 중심이며 나를 방어한다. 후회의 감정을 눈물로 방어한 것 같다. 또 다른 감정도 보였다. 엄마가 없는 내가 불쌍했다. 서러웠다. 서러움은 나의 비밀스러운 얼굴이다. 보고 싶은 마음도 어찌 보면 엄마를 만지고 싶고 기대고 싶은 나의 마음이다. 나에게 엄마가 필요해서이다. 엄마랑 나눈 시간은 행복했는데 빼앗겨서 분했고 억울했고 속상했다. 엄마만큼 기쁜 일에 소리 지르는 사람이 없다. 기쁜 일도 배로 늘어나지 않았다. 슬픈 일도 제대로 위로받지 못한다. 속상한 마음이 지속되었다. 오모리 타츠시의 영화 <일일시호일>에서 노리코는 이십 대에 다도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녀의 삶에 많은 일이 일어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하고 취업이 잘 안 되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 그러다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되고, 독립을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슬픔에 휩싸이기도 한다. 노리코는 그럴 때마다 다도를 배웠다. 스승은 말한다. 이제는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이 어떨까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한다. 제법 나이가 든 노리코는 환하게 웃으며 답을 찾은 표정을 짓는다. 우리가 끝이라고 생각한 시간은 다시 시작할 때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상실 그 자체로 나는 내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다시 내 삶이 사랑으로 돌아가야 할지 몰라서, 방법을 몰라서 두려워했다. 감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이 아니다. 나는 철의 십자가에 서러움이라는 무거운 돌을 놓았다. 나는 고독을 알았고 순례길을 통해 혼자 살아가는 시간을 배웠다. 부모의 부재로 받지 못하는 사랑을 이제는 주는 사랑으로 돌릴 때가 되었다. 서러움을 강요한 것은 오히려 나 자신인 것 같다. 외로움을 강요한 타자도 없었다. 타자에게 기댈수록 외로움은 커지는 것이다. 타자와 나는 자유로운 관계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독립을 하고 결혼할 날들은 멀었지만 남들보다 조금 일찍 부모님들과 헤어져서 나에게 공간이 생긴 것이다. 시작할 시간이 나에게 조금 일찍 온 것뿐이다. 나는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일들에 집중할 것이다. 사 월에 만난 눈처럼 인생은 뜻밖의 일들의 연속이다. 용기를 내어 부지런히 눈길을 내려가니 거짓말처럼 다음 마을에는 화창한 봄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