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와 아버지
오늘부터 하루하루가 가는 것이 무척 아쉽게 느껴진다. 걸음은 점점 느려진다. (그런다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은 아닌데도,) 오늘을 더 풍족하게 느끼기 위해 노력한다. 들판은 반짝였다. 제주도 돌담을 닮은 낮은 돌담과 푸른빛의 하늘이 대비를 이루었다. 아랍인이 스페인에 가져왔다는 동백꽃,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재스민이 사방에 아름답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아주 쾌적하고 흥겨운 감정이 흐른다. 상상했던 모든 것이 지상 위에 펼쳐져 있다. 땅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리듬을 느낀다. 순례자를 응원하는 음악이 흐른다.
자유롭게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에 도취한다. 초록 들판의 정교한 기하학적 요소에 반 고흐의 상상력이 가해진다. 외로움과 두려움은 햇빛에 바싹 말라 경쾌함만이 남았다. 가벼움과 우아함을 잊지 않는 순례자들이 풍경에 들어온다. 만국의 깃발이 펄럭이는 상상에 빠져든다. 나는 오색의 풍선이 날리는 축제 같은 분위기에 취한다. 혼자 걸을 때도 있었던 순례길이었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걷고 있다. 어제와 다른 풍경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당혹스러웠다. 당혹감은 불쾌하지 않고 오히려 반가웠다. 사람이라는 꽃이 만들어진다. 인사를 하는 것이 버거울 정도이다. 우리는 이제 인사도 생략한다. 순해진 바람은 우리를 어루만진다. 나는 또 한 번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갑자기 아버지가 쓴 원고지가 떠올랐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한참 크려고 그러는지 잠이 늘 쏟아졌다. 김동인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를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하는데 또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엉엉 울었다. 정말 몸이 마음을 제대로 따라주지 않는 때였다. (지금과 비슷하네, 그래서 사춘기와 갱년기는 닮았다고 하나보다.) 그때는 체벌이 있었다. 숙제하지 않으면 손바닥을 맞았다. 나는 벌써 고통과 수치심이 느껴졌다. 그런데 책상 위 원고지에는 글자가 쓰여 있는 것이다. 내가 꿈속에서 썼나. 나의 글씨체가 아니다. 나는 가로 원고지에 세로로 쓰여 있는 글씨를 보고 아버지가 쓴 것임을 알았다. 아버지는 마치 조선 시대 선비처럼 세로줄로, 자신의 글씨체로 독후감을 썼다. 게다가 중간중간에 한자도 썼다. 그렇게 아버지는 독후감을 대신 써주고 새벽에 출근하셨다. 나는 그것을 다시 내 글씨체로 바꿀 시간조차 없어 용감하게도 그대로 제출했다. 선생님은 아무 말이 없으셨다. 혼내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왜 그러셨을까. 아버지의 마음을 아셨을까. 그리고 나는 지금 왜 아득한 그 일이 떠오르는 것일까. 나는 그 원고지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은 글이라 느껴진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연애편지를 남겼고 나에게는 원고지를 남겼다. 쓴다는 것은 쓰리고 달다. 색에서 환기된 것은 자연만이 아니다. 자연을 바라보는 감각이다. 나의 감각은 사랑의 공간이다. 아버지는 고등학생이 되는 나에게 여자는 삼씨가 있어야 한다는 편지도 썼다. 착한 마음씨, 여러 솜씨, 가꾸는 맵씨가 삼씨이다.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면 반항심을 일으키는 글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나는 이제야 아버지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한다. 인성, 전문지식, 예술감각이라고 바꿔서 마음에 새긴다.
사리아로 가는 길에 사모스 도시가 있다.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이 있는 곳이다. 6세기 만들어진 수도원은 8세기에 이슬람의 침입으로 빈 도시가 되다가 8세기말에 복구되어 10세기부터 베네딕토 수도원이 운영되었다.
사리아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걸어 완주증을 획득할 수 있는 마지막 장소이다. 시간이 없는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부터 순례를 시작한다. 이제 110km가 남았다. 학교에서 온 학생들과 선생님들, 단체 순례자들이 넘쳐난다. 고딕 양식의 13세기 산 살바도르 성당은 마요르에서 사리아 요새라고 불리는 중세의 유일한 탑이 남아 있다.
사리아에서부터는 순례자 여권(크레덴셜)에 하루에 2개 이상씩 도장을 받아야 한다. 도장의 개수가 너무 적으면 산티아고 순례길 사무소에서 걸어가지 않은 것이 아닌지 의문을 가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어서 사리아에서 시작해서 오 일이나 일주일만 걷는 사람들이 많다. 사리아에서 출발하는 미국과 캐나다에 사는 한국인들을 만났다. 버킷리스트를 이룰 수 있게 되어 무척 행복하다고 한다. 며칠을 걸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속도가 중요하다. 나도 다음에는 일주일만 가족들과 함께 순례길을 걷고 싶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