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를 건너서 숲으로, 4월의 산티아고

한국인 오리진

by 홍지현

외국인들이 국적을 물어볼 때 나는 항상 사우스 코리아라 답했다. 코리아라고 말한 적이 없다. 북한과 차별을 두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같은 동양인이라도 한국, 대만, 중국, 일본은 다르다. 코리아라는 말을 들은 외국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한국인은 친절하다며 태권도, 서울, 케이팝에 대해 말한다. 이제는 삼성 로고를 보고 뿌듯해하는 시기는 지난 것 같다. 한국인 각자가 자신의 삶을 멋있게 즐기는 모습, 늘 배려하는 따뜻한 모습을 보며 우리는 어느새 선진국 입구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외국을 바라본다. 나이에 당당한 모습, 옛 건물을 그대로 지키는 모습, 경쟁하지 않는 느긋한 삶의 태도를 보며 본받고 싶은 마음이 든다. 신자유주의가 되어 버린 한국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래도 나의 내면을 세우고 만든 것은 한국이다. 왜곡이 덜 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는 곳은 나의 한국이다. 한국어를 쓴다는 이유로 금방 교포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은 두 가지 정체성에서 차별을 받는다고 말하지만 외모를 보고 오리진을 묻는 것은 차별이 아닌 또 다른 정체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들에게 어찌 됐건 한국인이라며 반가움을 표시했으니까. 그리고 그들도 미디어로 한국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말의 의미, 한식의 맛, 조상을 알고 있으니까 한국인이다.


스페인과 한국은 닮았다. 같은 민족끼리 싸우는 내전을 겪었고 그 전쟁은 사실 세계전이었다. 순하고 조용한 스페인과 한국은 왜 그런 끔찍한 전쟁을 한 것일까. 그때 우리들은 믿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기독교는 로마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타자에 의해 만들어진 정체성은 힘이 없다. 로마가 멸망하고 스페인은 바로 야만인 서고트의 지배를 받는다. 그때 스페인은 기독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스페인 이사벨 여왕은 기독교를 정치적인 도구로 악용한다. 이때부터 종교는 종교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람들은 그 틈 사이에서 초현실적인 세계를 바라보는 돈키호테에게 열광했다.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국도 일본에 지배를 당한 후 우리들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유교는 우리에게 실망을 안겨주었기에 붙잡을 것이 없는 우리는 분노했고, 전쟁을 통해 신화와 환상을 꿈꾸었다. 나는 스페인의 대지에서 박경리의 소설 <토지>가 생각이 났다. 자연은 아름답고 평화롭고 풍요롭다. <토지>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경남 평사리에 직접 가보고 알았다. 왜 그들이 나라를 그토록 지키려 했는지, 왜 그들이 토지를 소중하게 여겼는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순례길에도 그런 감정이 흐른다. 스페인이 사랑하고 사랑하는 소중한 토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자연이 인간에 의해, 전쟁에 의해 훼손되고 우리는 자연의 은혜를 모른 척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욕망의 시대이다. 넘쳐나는 물건을 욕망하고 또 욕망하고 권력과 자본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듯 신처럼 군다. 그러나 이곳은 전 세계 사람들의 버킷리스트 1위이다. 모두 쓸데없는 욕망을 벗어나려고 노력 중이다. 우리도 토지의 일부이기에 무의식적으로 끌리는 것일까. 땅은 하늘과 반대로 가장 낮고 물질적이다. 토지가 성스러운 곳이라는 자각은 성스러움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고 땅에 있다는 생각으로 바뀐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있는 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모성애 이상을 느꼈기에 충만한 시간이었다.



아르수아로 가는 중에 멜리데 마을이 있다. 스페인 북부의 해안에 잡히는 문어로 만든 매콤한 뽈뽀 요리가 유명하다. 삶은 문어에 고춧가루와 올리브유를 뿌린 요리이다.


인구가 칠천 명이나 되는 도시이지만 개발이 더딘 곳이라 한다. 정전 소식을 들었을 때 이 마을만 정전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스페인과 포르투갈까지 대정전 사태가 일어났다고 하니 믿기지 않았다. 식당에서 밥을 사 먹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알베르게 주인은 맥주는 찬물에 담그고 숯불로 소시지와 채소를 구워주었다. 그들의 태도는 무척 느긋해서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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