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수업을 하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항상 느끼는 부분이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각양각색 사람들에게 한결같은 잣대로 예의라는 것을 규정지을 수 있을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예의범절로 세상을 살아간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세대가 달라지고 개인의 기질과 성격도 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잘하는 사람들, 자신과 잘 맞는 사람들을 예의가 있다고 평가한다. 나에게도 예의를 지킨 사람들이 많다. 자택에서 수업을 할 때 아파트 1층 우편함에 편지를 두고 간 학생을 잊을 수 없다. 아이라 경비아저씨에게 인터폰을 하면 입구 문이 열리는 줄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이 입구 문으로 오기까지 기다리다가 우편함에 편지를 넣었다고 한다. 아이는 자신의 수업이 스승의 날에 없어서 그날에 감사의 편지를 놓고 갔다. 고사리손으로 쓴 편지와 1층에서 기다린 마음이 모두 감동이었다. 내가 이 아이에게 무엇을 전하는 어른이 되어야 하나 무척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교 논술 수업을 나간 적이 있었다. 학기가 끝나 아이들과 마지막 수업을 한 날이었다. 갑자기 한 아이가 다음에 또 오면 안 되냐고 울먹거렸다. 선생님 집이 너무 멀다며 핑계를 대고 있는데 다른 아이들도 우르르 교탁으로 나왔다. 이 얘기 저 얘기하다가 아이들이 아쉬웠는지 사인을 해 달라고 했다. 나는 유명인사도 아니고 난생처음 사인 요청에 놀라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들의 이름과 응원의 말을 담은 글을 내 이름과 함께 공책에 적어주었다. 어떤 아이는 전화번호도 알려 달라고 했다. 나는 방과 후 교사라 번호가 노출된 상태라 적어주었다. 물론 그 아이는 그 후 전화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참 감정에 솔직하고 분위기를 타며 조금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공감하고 칭찬하면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것 같다. 늘 아이들에게 조심해야지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고 아직도 그 사인회 장면은 나의 머릿속에 소중하게 저장되어 있다.
경기도 히든 작가로 선정되어 책이 출간된 적이 있다. 어떻게 알았는지 아이들이 그 책을 수업 시간에 들고 왔다. 모두 나의 책을 들고 있는 그 장면도 잊지 못한다. 엄마가 사인을 받아오라고 했다고 한다. 어른에게 사인하기는 또 처음이다. 책을 출간한 사람이 주변 인물이었으면 하는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마치 자신의 일인 양 좋아하는 마음, 책을 구입해준 마음도 무척 고마웠다.
<오이디푸스> 책을 읽는 도중 동네에 오이디푸스 연극이 상영 중이었다. 아이들과 주말에 만나 연극을 보았다. 학부모들은 다음 수업에 음료수와 케이크를 가지고 와서 고마움을 표시했다. 깜짝 방문이라 놀랐고 아이들의 성적이나 수업 이야기를 하지 않고 문학인으로 만난 것 같은 순수한 시간이었다. 대형학원이면 할 수 없는 이벤트를 한 것 같아 나도 기분이 좋았다.
반면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업료가 두 달 동안 입금이 되지 않아 전화를 했는데 보냈다고 확인하라고 한다. 계좌 번호가 잘못 전달되었나 싶어 서로 확인을 했다. 답답하게도 입금은 안 되었고 송금만 된 상황이다. 근처 학원을 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요청했더니 그런 경우가 은근히 많다고 한다. 형제를 7개월 동안 가르쳤는데 지금까지 수업료를 받지 못했고 전화하면 알았다는 말만 듣는다고 한다.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들끼리 만든 학원협회에서도 늘 못 받은 수업료 문제를 일 순위로 얘기할 정도라고 한다.
한 주차에 1시간 30분 수업을 하고 있다. 4~5명 정도 그룹 수업이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수업이라 그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30분 정도는 아이들이 온전히 글을 쓰는 시간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글쓰기 시간은 각자 다르다. 빨리 쓰는 아이들은 다시 꼼꼼히 봐주며 추가할 부분이나 잘못된 부분을 스스로 고치라고 조언해준다. 천천히 쓰는 아이들은 기다려주려고 해도 다른 아이들이 다 썼다고 하면 초초해하며 글을 잘 못 쓴다. 이 부분도 참 어려운 부분이다. 다 쓴 아이들에게 잠깐 그림책을 읽으면서 기다리게 하기도 한다. 어느 날 모든 아이들이 글쓰기를 5분 정도 빨리 끝냈다. 더 수업을 할 의미가 없다. 수업이 끝났다. 밖에서 아이들을 픽업하는 학부모들도 있는데 5분 빨리 끝난 부분에 화를 냈다. 글쓰기 부분에 대해 아이들마다 속도가 다른 점, 그러나 오늘은 신기하게도 모두 빨리 끝낸 점을 설명했는데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정확히 끝내주기를 요구했다. 사실 원하는 대로 맞게 끝내기 위해서는 5분을 질질 끌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기분도 중요하다. 집중을 해서 성취감을 맛보며 결과물에 만족을 하는데 형식에 치우쳐 융통성 없이 시간을 맞추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각자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순간이다. 또한 나의 수업에 침범했다는 생각에 불쾌했다.
나의 수업에 모두 만족을 할 수는 없다. 기대한 만큼 아이의 성과물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자 한 통으로 수업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행동은 서운하다. 차마 미안해서 전화를 못할 수도 있고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도 아이와 선생님이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고 학원을 그만두는 것이 예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유종의 미는 이런 것이 아닐까. 인간관계에서 작별인사를 제대로 나누는 연습도 필요하다. 졸업을 앞둔 두 학생이 갑자기 그만둔 적이 있어 졸업 선물을 미처 전해주지 못했다. 같은 반 친구들에게 놀러 오라는 말을 전달해달라고 했지만 끝내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다. 서운한 마음이 참 오래갔다.
보강 문제도 늘 발생한다. 일주일에 한 번뿐인 수업이라 학부모 입장에서 빠지면 큰 손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의 빠지지 않으려고 하지만 갑자기 아이가 아프거나 집 안에 일이 생겼을 때 빠지는 경우는 어떻게 하냐고 문의한다. 처음에는 학부모 입장에서 생각해서 보강을 따로 해주었다. 그러나 내가 너무나 지친다. 1인 수업을 따로 하기에 서로 시간을 맞춰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아이들도 혼자 하는 보강수업을 싫어한다. 그래서 일주일 수업 중에 같은 학년 수업을 요일을 바꾸어 듣는 방법을 선택했다. 만약 금요일 5시에 수업을 듣는 아이라고 해도 금요일에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미리 화요일이나 수요일 다른 수업을 듣는 것이다. 어쩌다가 한 번 인원이 초과된다고 해서 수업에 큰 방해가 되지 않기도 하고 아이도 보강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설명을 했는데도 자신은 바꿀 수 있는 시간이 없다며 따로 보강을 해달라는 사람도 있다. 갑자기 그날 문자가 와서 오늘 수업을 못 가니 보강을 잡아달라고 한다. 다음 시간에 아이에게 어디가 아팠냐고 물어보니 갑자기 놀러 갔다고 한다. 그럴 경우는 본인이 선택한 시간이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서로의 가치관이 또 충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