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랑 다니다 보면 친절한 사람을 참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저 가게는 불친절하네, 장사 제대로 하지 못하네 평가를 한다. 나는 소상공인의 입장이 되어 대신 답한다. 저 가게가 모든 손님에게 지나치게 친절할 필요는 없어. 음식이 맛있으면 되고, 거짓말로 사기를 치는 가게가 아니면 되는 거지. 역시 사람은 그 입장이 되어야 제대로 공감할 수 있다. 전업 주부로 아이들을 키울 때는 남편의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전부 이해하지 못했고, 소상공인이 아니었을 때는 그들의 고충을 전혀 몰랐다. 혼자 책을 읽는 시간을 즐기고 집단주의 회식문화를 힘들어하는 자신을 개인주의라고 소개하는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고 이 부분에 대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발견했다. 합리적 개인주의는 유아적인 이기주의나 사회를 거부하는 고립주의가 아니고 자신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음을 수긍하고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타협할 줄 아는 연대주의라고 말한다.
우리는 무한 경쟁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같은 음식을 파는 가게도 많고, 논술, 영어, 수학을 가르치는 학원도 무척 많고, 회사에서는 승진 자리도 정해져 있다. 모두가 비슷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억지로 웃어야 하고 더 많이 일해야 하고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 경쟁 속에서 소수만이 살아남는 제도가 공정한 제도인가 서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남들보다 더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평가와 보상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다른 평가를 하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것이 실질적인 평등인 것이다. 다양한 능력들은 다양한 기준으로 정확하게 평가받고 보상받아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 바로 합리적인 개인주의자이다.
어린 시절 “손님은 왕이다”라는 표어를 본 적이 있다. 아직도 손님은 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도 감정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왜 소비자에게 무한한 친절을 베풀어야 하는가. 우리는 소비자이기도 하고 어느 곳에서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산자이기도 하다. 내가 당한 억울함을 나보다 더 약자에게 푼 적은 없지 않나. 이렇게 서로 힘들게 하는 경쟁의식보다는 공감하는 연대가 필요하다. 직접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고 타인의 심리와 개별성이 드러나 있는 문학을 통해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면 좋다. 공감하면 타협할 수 있고 양보할 수 있는 힘도 생긴다. 나는 아이들에게는 친절하다. 왜냐면 그들은 나보다 약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부모나 나와 교육 철학이 맞지 않거나 무례한 사람에게는 친절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행동에 상처를 받지 않는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건강한 사회이다.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이익 배분에 부당함을 느끼고 나는 독립 학원을 차렸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다. 나는 커피도 대기업 가게를 가기보다는 소상공인 가게를 이용한다. 이 행동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양성이 있는 부분은 건강하다고 믿는다. 그림책을 출간할 뻔한 적이 있다. 글작가로 4%의 원고료를 준다고 한다. 나는 거절했다. 그리고 이 책과 그림책 모두 독립 출판으로 스스로 만들 생각이다. 전에는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하지 않고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생각만 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는 이상한 말로 세뇌를 당한 것 같다. 부당함을 견디다 보면 결국 힘든 사람은 나이다. 비겁하고 초라한 나의 모습에 나중에는 화가 나기도 한다. 이제는 부당하다고 말하고 행동하려고 한다. 나는 모두에게 항상 친절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또한 모두에게 과잉 친절을 기대하지 않을 의무도 있다. 학원을 운영할 때 나만의 기준을 만들고 할 수 없는 부분, 할 수 있는 부분을 스스로 정하고 원칙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