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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Nov 02. 2022

"농담"을 읽고

책을 그리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농담"을 읽고 나면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의도는 알기 어렵지만 4명의 캐릭터가 뚜렷한 자국을 남긴다. 왜 그럴까


"농담"에서 열렬 공산주의 운동 학생 루드빅은 첫눈에 반한 마르게타를 좋아하며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관심을 끌기 위해 과하게 보낸 편지, 스탈린의 적 트로츠키를 찬양하라는 농담이 섞인 글을 보낸 것이 화근이 되어 당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된다. 루비딕은 평소 농담을 즐기는 그와 비슷한 성향의 친구 제마넥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는 냉정하게 돌아선다. 오스트라바라 유배지에서 강제 노역을 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던 그에게 루치에가 선물같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녀가 육체적인 사랑을 거부하고 허무하게 둘은 이별한다. 몇십 년이 흐른 후 제마넥의 아내 헬레나를 알게 되고 그에게 복수할 목적으로 그녀에게 접근한다. 그러나 제마넥은 이미 젊은 애인이 있었고 헬레나를 통한 복수는 허무하게 끝난다. 


냉전이라는 단어처럼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극한으로 달리는 시기, 루드빅처럼 농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또 농담 한 마디 때문에 당에서 쫓겨나 삶이 완전히 부서진 루드빅의 복수는 왜 이렇게 가볍고 우스꽝스럽게 실패한 것인가. 절대적인 가치라고 생각하는 종교, 사랑, 이데올로기는 우리 삶의 뿌리일 것이다. 그러나 가치가 없으면, 또는 절대적이라고 믿는 가치에 반대하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루치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을 꽃으로 표현하고, 헬레나는 육체적인 사랑으로, 루드빅은 농담으로, 야로슬로브는 음악으로 표현한다. 이것이 오히려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소설을 읽고 느낀 강한 캐릭터들의 하나하나가 바로 실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에게는 4명의 캐릭터들이 뚜렷하게 남았나 보다. 


그들은 거대하고 일시적인 일들은 전혀 몰랐고 다만 작고 영원한 자신의 문제들을 위해 살았던 것이다. 더 오래되고, 더 알 수 없고, 더 본능적인, 언어 이전의 어떤 것을 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야기의 대상으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삶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가벼운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이데올로기는 중요하다. 정치가 맘에 들지 않으면 우리는 거리로 나간다. 역사 속에서 우리 선조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도 바쳤다. 무거운 이데올로기에서 어떤 가벼운 면을 보아야 하는 것인가. 거대한 무언가에 눌려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잃고 또는 다른 거대한 무언가를 쫓아 가장 중요한 것을 쉽게 잊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황순원의 <너와 나만의 시간> 소설에서 현 중위는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고 김 일등병은 주 대위의 목숨을 끝까지 지키려고 했다. 극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까. 그러나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쟁은 누구를 위해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전쟁은 이데올로기의 탈을 쓴 이기적 폭력이다. 동족을 죽이고, 살인이 무죄가 되는 현상에서 인류애는 애초부터 있을 수 없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다. 루드빅도 복수를 위해 살았다. 복수는 루드빅이 살아가는 버팀목이 되었다. 그러나 복수의 출발점은 농담이었다. 우리의 삶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볍고 우습고 우연으로 빚어지는 비극적 아름다움인가 보다. 소리를 내지 않는 휴지의 시간에서만 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나 보다.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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