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없던 시절의 유럽여행[1]
혼자 하는 나의 첫 여행은 26살,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이 최종 결정되었던 그날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면서 시작되었다. 최종 합격자가 발표되고 정식 입사까지 짧으면 몇 주, 길면 한 달에서 두 달까지도 걸리는 회사였기에 그 막간을 이용해 유럽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합격 발표가 나는 날 바로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비행기 티켓 구매를 요청했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뭐든지 뚝딱뚝딱해내는 시절이 아니었다. 인터넷으로 구매가 가능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자주 거래해서 친해진 여행사 언니에게 전화로 티켓을 구매하는 게 더 편한 시절이었다.
유럽여행을 갈 거라고 하니 티켓 구매를 위해 이거 저거 캐물었다. 언제 출발할 건지, 며칠이나 있을 건지, 어디로 들어갈 건지, 어디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건지. 사실 그 당시 내가 생각했던 유럽여행은 급작스럽게 결정된 거라 이렇다 할 계획이 없었다. 그냥 유럽여행을 가는 게 목적이었고 꼭 가고 싶은 곳이 몇 군데 있기는 했지만 그 몇 군데를 빼고는 진짜로 막연하고 두리뭉실했다.
[이번 주 토요일에 출발할 거고 터키 이스탄불로 들어갈 거예요. 돌아오는 건 일단은 한 달 후? 어떻게 될지 모르니 오픈티켓으로 해 주세요. 그리고 아웃도시는 아무 데나요. 어디든 상관없어요. 한 달 동안 거기까지 가면 되죠.]
이전까지 해외여행을 몇 번 해 보기는 했지만 모두 부모님과 함께한 가족 여행이었고 일본, 중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이었다. 그래서 저렇게 대책도 겁도 없었나 싶기는 하다.
나의 주문사항을 전달받아 열심히 티켓을 찾던 여행사 언니는 결국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이스탄불 IN 비엔나 OUT'인 아에로플로트사의 티켓을 구매해 줬다. 그리고 그 티켓과 유레일 패스, 여행의 첫 번째 도시인 이스탄불의 호스텔 4박만 예약하고 일주일 후에 비행기에 올라탔다.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가 터키 이스탄불이었던 이유도 사실 별거 없었다. 고3대 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에 와서 간식을 먹으면서 봤던 TV 프로에서 터키에는 닥터피시라는 게 있고 닥터피시가 아토피에 효과가 있다는 걸 봤었는데 그때 결심했다. 나중에 꼭 터키에 가기로. 그래서 일단 첫 번째 목적지는 터키 이스탄불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결정하지 못했고 꼭 가봐야 할 곳은 프랑스 파리였다. 다행히 이 스타일불 In 비엔나 Out이라면 중간에 프랑스 파리를 거쳐서 가는 건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그렇게 두꺼운 유럽 가이드북 하나와 터키 가이드북을 들고 비행기에 올라탔고 비행기 안에서 가이드북을 정독하며 터키 안에서 이스탄불, 차낙칼레, 파묵칼레를 가기로 결정했다. 터키 다음 나라는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다가 지도를 보고 가장 가까운 그리스로 정했다. 그리고 터키 가이드북에서 저 세 도시를 제외하고는 다 뜯어냈다. 가지 않을 도시들에 대한 페이지는 경유지 공항에서 버릴 생각을 했다. 짐이 무거워지면 안 되니까.
내가 탄 비행기는 모스크바를 경유해서 이스탄불까지 가는 비행기. 모스크바에 도착하고 40분 만에 경유를 해야 했다. 사실 그 당시에는 이렇게 경유 시간이 짧으면 나는 비행기를 갈아타도 내 수하물은 비행기를 갈아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짐이 못 탈 수도 있다는 사실은 걱정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40분 내에 언어도 안 통하는 러시아 공항에서 비행기를 잘 갈아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만 했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내 앞에는 [이스탄불], [바르셀로나] 등 몇 개 도시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서 있는 무뚝뚝한 러시아 항공 직원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비행기에서 내리기 시작하자 그 직원들은 '이스탄불!!'을 외치며 이스탄불로 환승하는 승객을 찾았다. 그리고 그 승객들이 다 모이면 뛰어야 했다. 앞에서 우리들을 이끌어 주는 직원이 한 명, 뒤에서 우리들이 이탈하지 못하게 지키는 직원이 한 명이었다. 그렇게 러시아 모스크바 공항에서 다 같이 미친 듯이 뛰어 환승게이트를 통과하자 직원들은 그제야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줬다.
사실 여러 가지로 악명 높다고 하는 러시아 항공이지만 지금껏 어떤 공항에서도 경유 시간이 짧다고 이런 서비스(?)를 해 주는 항공사는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아직도 러시아 아에로플로트에 대한 이미지가 나쁘지 않다. 실제로도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타기도 했다.
그렇게 모스크바를 출발해서 터키 이스탄불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타고 꽤 늦은 저녁 시간,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미리 숙소에 신청해 둔 픽업 서비스를 이용해 이스탄불의 올드타운에 있는 숙소에 도착한 내가 했던 생각은 이거였다.
'여기서... 잘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