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이스탄불

스마트폰 없던 시절의 유럽 여행[3]

by 하로걷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씻고 모든 짐을 캐리어에 넣은 후 캐리어는 침대 기붕에 체인으로 묶어두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숙소 컨디션 때문에 차라리 빨리 밖에 나오고 싶었다. 그렇게 지하에 있던 숙소에서 뛰쳐나오자 지금까지의 불안하고 꺼림칙한 마음이 싹 사라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돌길, 낡은 건물, 그 건물들 틈틈이 자리 잡은 작은 상점들. 그리고 하늘이 푸르렀다. 내가 여행을 갔을 때는 5월 말, 날씨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한적한 이른 아침의 이스탄불 올드타운을 지도도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지금이야 구글지도 없는 여행은 생각도 하기 힘들지만 스마트폰이 세상을 점령하기 직전, 내 손에 들린 것은 핸드폰이 아니라 쭉쭉 찢어낸 가이드북 몇장이었다. 그렇게 그 미로 같은 골목을 한참 동안 걸었을 때 눈앞에 넓은 광장과 함께 그 유명한 블루 모스크와 아야 소피아가 나타났다. 넓은 광장의 양쪽 끝에 이슬람의 걸작 건축물과 기독교의 걸작 건축물이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블루 모스크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지만 입장을 하기 위해서는 복장 규정을 따라야 했다. 긴 줄을 서서 입구까지 가니 나는 치마 위에 천을 둘러야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당시에 무릎을 살짝 덮는 길이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음에도 종아리가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전부 가려야 했다. 다행히 입구에서 다리를 가릴만한 큰 천을 무료로 빌려줬고 허리에 두르고 옷핀으로 고정을 시키자 직원이 웃으며 엄지 척 포즈를 하고 들어가라고 했다. 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여자라도 머리를 가리지 않고 출입이 가능했다.


모든 이슬람 모스크에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들어가야 한다. 여름용 샌들을 신어 샌들을 벗고 나면 맨발로 들어가야 해서 조금 찝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렇게 천을 허리에 두르고 맨발로 들어간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는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접한 이슬람었다. 거대한 돔과 내부를 장식한 화려한 파란색의 타일들, 내부를 밝히고 있는 조명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화려함이었고 내가 지금껏 살던 문화권을 떠나와 낯선 곳에 서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블루 모스크, 술탄 아흐멧의 맞은편에는 아야 소피아 성당이 있다. 이스탄불이 콘스탄티노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당시 동로마 제국의 수도를 대표하는 성당으로 지어진 아야 소피아는 훗날 이슬람 세력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후 이슬람 모스크로 개조했다고 한다. 즉, 처음 지어질 때는 성당이었지만 거기에 이슬람 모스크의 필수 구조물인 미나렛(탑) 등을 추가하여 모스크가 된 것이다. 그야말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융합을 잘 보여주는 건축라고 한다.


참고로 터키는 최근 몇 년간 급속도로 이슬람 원리주의화가 진행되었지만 내가 처음 터키에 갔을 때만 해도 블루 모스크에 히잡을 쓰지 않고도 들어갈 수 있었고 아야 소피아의 2층에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 천사들의 모자이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수와 성모 마리아의 모자이크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이스탄불 사람들은 이슬람 예배를 드렸다.


사실 그래서 이스탄불이 좋았다. 동양과 서양의 교차점,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 기독교와 이슬람이 함께 공존하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