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정도는 혼자 갈 수 있거든요

스마트폰 없던 시절의 유럽 여행[4]

by 하로걷다

이스탄불의 주요 관광지는 거의 대부분 구시가 쪽에 몰려 있다. 블루 모스크, 아야 소피아, 톱카프 궁전 모두가 비잔틴 제국을 수호했던 3중 성벽 안쪽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물론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도 이곳에 있었고 고고학 박물관 쪽으로 향해서 걸어가고 있었다.


고고학 박물관까지 가는 길은 꽤 번화가였고 도로 위로는 낯선 트램이 다니는 길이었다. 지금이야 트램이라는 교통수단이 익숙해졌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뭔가 일제강점기에나 쓰였을 것 같은 교통수단이 현대적인 모습으로 이스탄불 시내를 다니는 모습이 조금 낯설고 색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낯선 트램만큼 낯선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그의 이름은 '피보', 어떻게 쓰는지 스펠링은 모르겠다. 이스탄불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고 한국인 친구가 있으며 다음 주에 한국에 갈 일정을 가지고 있는 친절한 이스탄불 아저씨였다.


피보 아저씨는 내가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간다고 하자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카페로 나를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고고학 박물관을 다 보는 데는 2시간 정도 걸리니 2시간 후에 자신이 입구에서 기다리겠다고, 같이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가라면서 말이다.


그 순간 다행히도 촉이 왔다. 도대체 누가 한가롭게 여행자를 2시간이나 기다려서 자기 카페로 초대해 공짜 커피를 줄까?


카페로 초대하는 제안은 다른 약속이 있다면서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문제는 이 사람이 내가 고고학 박물관에 간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 혹시라도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제 됐다고, 박물관까지 혼자서도 갈 수 있다고 했지만 끈질기게 박물관 앞까지 나를 따라왔다. 다행히 박물관 안까지는 따라오지 않았지만 불안했다.


하지만 불안해도 고고학 박물관 구경은 해야 했다.


특히 이곳에는 고대 바빌론의 성문이었던 이슈탈의 문 일부와 알렉산더 관(진짜 알렉산더의 관이 아니라 알렉산더가 조각된 관)이 대표적인 유물이었다.

나중에 유럽여행을 여러 번 하다 보니 유럽의 유명 박물관 여기저기에 이슈탈의 문 조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때는 이스탄불에서 처음 본 거라 너무 신기했다. 이름만 들어봤던 바빌론의 성벽 일부가 지금까지 남아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고 현실감이 없었다. 파란 바탕에 동물들의 모습을 새긴 것도 정교하고 도저히 그 시대의 것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유명한 알렉산더 관도 마찬가지였다. 대리석으로 이런 조각을 해 내다니. 고대인들의 장인정신이란...


일부러 느릿느릿 박물관을 돌아보고 밖으로 나오면서 일부러 다른 관광객들의 뒤를 졸졸 따라 나왔다. 혹시라도 나를 기다리고 있으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었다. 다행히 피보 아저씨는 바쁘셨는지 혹은 다른 호구를 찾아 떠나셨는지 보이지 않았다. 부디 피보 아저씨가 그날 하루 허탕을 쳤기를 바라며 숙소로 돌아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피보 아저씨의 수법은 매우 매우 유명한 수법이라고 한다. 만약 카페에 따라가서 커피나 음료를 마시면 잠깐 기절을 하고 가진 걸 탈탈 털어간다고 한다.


여행을 할 때 과도하게 친절을 베풀며 다가오는 사람은 조심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첫날이었다. 그리고 한국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사람은 절대 믿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