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이국적인

스마트폰 없던 시절의 유럽 여행[5]

by 하로걷다

피보 아저씨를 피해 잠시 숙소에 들렸다가 몇 명의 한국인을 만났다. 나처럼 한 달 정도 일정으로 유럽여행을 온 사람도 있었고 굉장히 장기 여행 중인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같이 저녁을 먹으러 나가자고 했고 블루 모스크와 아야 소피아 사이에 위치한 관광지의 뒷골목에서 같이 밥을 먹었다. 그들과 밥을 먹으면서 굉장히 재밌는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국제학생증'이란 것이 유럽 여행의 필수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유럽 여행을 하기 전에 국제학생증을 발급받아오는 학생들이 정말 많았는데 나는 안타깝게도 이미 대학교를 졸업해서 학생증을 발급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유럽에 들어가기 전에 이집트에 가면 이 국제학생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기 여행자들은 유럽에 들어가기 전에 이집트에 들렀다 가는 것이 국룰이라나?


지금 생각해 보면 입장료 할인을 받기 위해 이집트까지 가서 가짜 국제학생증을 발급받는다는 사실이 번거롭고, 옳지도 않은 일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유럽의 박물관이나 미술관, 관광지의 입장권이 비싸긴 비쌌다. 당시에는 환율도 1유로에 1500원 이상이었던 시대라 주머니 사정이 가벼웠던 배낭여행객들에게는 그런 팁 아닌 팁이 돌았던 거 같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입국을 할 때는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거기에서 처음 들었다. 이스라엘 입국 도장이 찍힌 여권으로는 주변 이슬람 국가의 입국이 막히는 경우가 많아 도장 대신 여권 표지에 유다의 별 스티커를 붙여 준다는데 그 스티커 접착력이 너무 강력해서 떼어낼 때 여권 케이스가 같이 손상되기 때문에 떼지 못해 주변국 입국을 못 하거나, 떼어내면 여권 훼손으로 입국을 못 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고...


그런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여행 계획을 이야기하며 맥주 한잔 할 곳을 찾았다. 사실 터키는 이슬람 국가라 아무 곳에서나 술을 팔지 않는다. 관광객들이 많은 곳은 술을 팔지만 현지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술을 팔 것 같은 곳에서도 술을 팔지 않는 곳이 많았다.


우리가 찾은 곳은 블루 모스크가 한눈에 보일 법한 곳에 위치한 루프탑 카페. 하지만 입구가 있는 1층은 그냥 카펫 가게였다. 카펫 가게 직원들에게 루프탑에 간다고 말을 하면 내부에 있는 엘리베이터로 안내를 해 줬다. 한 명이 겨우 탈 만한 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내 손으로 문을 닫고 타야 하는 1인용 엘리베이터는 그때 처음 봤다.


그렇게 낯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에 있는 카페에 도착했을 때 내 인생에서 가장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이스탄불의 상징인 블루 모스크와 그 뒤로 펼쳐진 마르마라 해. 블루 모스크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까지 동북아를 처음 벗어나 본 내게는 너무나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무슬림들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살라(Salat)가 블루 모스크의 미나렛에서 울려 퍼지는 순간 이국적인 감각은 정점을 찍었다. 내가 진짜로 한국을 떠나 외국에 와 있구나라는 느낌이었다.


사실 나는 이때로부터 약 2~3년 후에 다시 이스탄불을 방문할 일이 생겼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1층의 카펫 가게 점원들의 안내를 받아 다시 루프탑에 올라갔다. 내 생에 최초이자 가장 아름답다 생각했던 그 풍경을 다시 보기 위해서였다.

몇년이 지났어도 풍경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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