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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Mar 22. 2016

심해어

minolta x-300   제주 협재




심해어는 육지로 나오면 수압을 견디지 못해 눈이나 장기가 밖으로 튀어나와 죽어 버린다고 한다. 마음속자리한 말은 심해어와 비슷한 것 같다. 말은 오래 묵혀 둘수록 무거워져 그것을 품은 나까지 아래로 끌고 내려가버린다. 그 무게를 견디다 못해 충동적으로 토해버린 말들은 여지없이 추해 보인다. 안에서 그토록 빛나던 말들이 비린내를 풍기며 두 눈 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얼마 전 꿈속에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드러났었다. 현실에서였다면 다른 사람을 손가락질하며 자신들의 허물을 망각하려 했을 텐데, 꿈에서는 누구도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자신의 비밀이 얼마나 더 멀리 퍼질까만 전전긍긍했다. 덕분에 내 마음 역시 밖으로 드러나고 나면 추한 허물일 뿐이란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추해지는 것이 두려워 가슴속에 묻어 버리면 결국 마음은 말의 무덤이 되어버린다. 시간이 지나 죽은 말을 혼자 꺼내 본다 한들 마음만 아릴 것이다.


언제고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죽은 말과 산 말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끌어와 이곳에 남겨 두고 싶었다. 심해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라 느껴져서였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함이라 손가락질을 받는다 해도 무거운 말들을 덜어낸 행복에 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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