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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이대로 내가 나를 끝내버린다면 분명 누군가의 마음속에 박힌 못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망설여지곤 한다. 실은 바라고 있던 일일지도 모른다. 항상 내가 제자리를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었기 때문에. 아직은 그리 멀지 않다는 생각, 또는 아직은 그리 가깝지 않다는 생각에 멈칫거리는 마음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언제나 침묵으로 끝난다.

분명히 내 밑바닥에선 뭔가 끓고 있는데 막상 그걸 찾으려고 하면 뱃속에서부터 힘이 빠져 텅 비어 버리는 듯한 무력감이 든다. 오히려 취해 있을 때 머릿속이 더 환하니, 바라건대 당신이 이런 나를 포기하고 발로 차서 진창에 빠트려 주었으면. 모든 것이 내가 예상하던 대로 흘러가겠지. 아주 조금 걱정되는 것은 그 오랜 외로움과 독백은 어디로 흘러가야 할 것인지, 데인 자리가 너무 아파 두 번 다시 불을 가까이하지 못했단 말을 어디에 꺼내 놓아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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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이 흔들리는 빛 속에서 답을 찾고 있었다. 그 틈새에 꿈이 끼어들어 와도 결국 그것은 순간일 뿐, 나는 꿈을 글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당신은 언제나 더 번쩍이고 더 분명한 장면만을 원했으니 결국 전해줄 수 있는 것은 가장 선명한 침묵뿐. 그 이상으로 또렷한 풍경이 있다면 나는 진작, 아니, 처음부터 당신에게 내 꿈을 전해 줬으리라.

아무리 답을 원하며 운명에 목을 매도 돌아오지 않는 답이 있는 한편, 끊임없이 답을 보내며 운명에 목을 매도록 하는 답도 있다는 것이 나를 얼마나 울렸던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른 답을 갖고 있다는 것을 진작 알았더라면 이곳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 답은 과연 이것 뿐인 것일까, 이 답은 너무 슬픈 것이라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고 결론을 내고 누군가 답을 원하며 질문을 할 때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신을 비난하게 됐다.


우리는 결국 기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최소한 기억은 지금의 현실보다는 조금 덜 슬픈 답이 되어주곤 한다. 당신의 답은 당신의 기억. 그것이 설령 아무리 아프고 슬픈 것이라 하더라도 기어이 당신이 답이 되고 말 테니 종국에 우리는 혼자, 함께도 아프고, 홀로도 슬픈 것이니 결국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괴로운 일.


그래서 나는 이대로 못이 될 테니 당신은 남은 평생을 그 못을 뽑아내기 위해 애쓰는 형상으로 살아 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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