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rchid Mar 04. 2016

2012




가장 가까워야 할 것이 멀어지고, 기억나지 않는 일이 많아졌다. 의미를 찾는 일을 더는 하지 않기 때문일까. 힘든 일도 슬픈 일도 없는 별천지를 꾸려 보고 싶었다. 그래서 얻은 것은 되려 괴리감과 허무함. 상상과 현실을 구분 짓고 나면 접점이 거칠어져 더 아프고 말 거라는 걸 왜 몰랐을까. 수백수천의 글자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간  아무것도 손에 잡을 수가 없었다. 잡히지 않는 것을 잡으려 애쓰는 것보다는 뒷짐 지고 바라보는 것이 편해서 지켜보게 됐다. 때가 되면 알아서 줄을 이어 찾아올 테니까.




아픈 몸을 대신해 정신이 죽어가는 느낌이다. 마음이 너무 무거워져 이젠 돌처럼 느껴진다. 그냥 농담처럼 살아버리면 편할 텐데. 욕심 부려 쓴 말들은 결국 쉽게 번지고 흐려진다. 언제고 쏟아내야지 하고 미뤄뒀던 이야기들도 끝없이 뒤엉키기만 할 뿐이다. 나는 결국 안으로만 향하는 소용돌이처럼 나이들어 가려나 보다. 

아무리 달라지려 발버둥 쳐도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이쯤 되니 더 선명해질 것도 흐려질 것도 없다.  그간 뱉어낸 뜻 모를 말들은 얕은 속을 가리기 위한 연막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욕심을 내서 이것저것 갖다 붙이다 보면 결국 변명이 되어버리니 진심을 담고 싶을 때는 잔가지를 모조리 쳐버리는 쪽이 좋은 것 같다.


한없이 맴돌았었고 답은 보이지 않는 것이란 걸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찾아다니길 포기할까? 



                                                       

고조된 감정으로 내뱉아 놓은 걸 언제고 번복하고 말 것 같아서 진심이 되는 것이 무섭다.  

"복수는 즐거움, 은혜 갚음이 짐"이라는데 속죄는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할지. 행동하지 않는 속죄는 자기 합리화에 불과한 건 아닐까. 변명처럼 편리하지만 죄책감은 훨씬 덜 들겠지. 

난 일찍 깨달았던 것이 아니라 일찍 지쳤던 걸지도 모르겠다.  


                                   

   

                                                                                                    

"지울 수 없을 것 같았던 괴로운 기억도 결국에는 주머니 속에 넣어 들고 다닐 만한 돌덩어리"가 된다고 한다. 여전히 무겁긴 해도. 믿거나 말거나.

작가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