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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Mar 24. 2016

손가락



여태껏 이룬 것은 단 하나도 없는데, 앞으로 살 날은 가늠조차 안 되는 길이로 남아있다.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고 펴며 계산하는 동안 머릿속에서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사는 일, 죽는 일, 그리고 죽음 뒤의 날들을 과연 헤아릴 수나 있는 것일까. 한자리에 앉아 접고 펴기를 반복해도 끝끝내 답을 얻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다. 

  
오랫동안 진창 속에 있다 보면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줄곧 빠져나가고 싶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이번만큼은 훨씬 더 먼 곳으로 가겠다며 도망치듯이 떠나왔던 날들. 그곳에서 주인을 잃고 오롯이 앉아 있는 기억을 손으로 쓸어 보면 먼지처럼 버려진 내가 보인다. 나를 버림으로 조금이라도 가벼워졌나? 물어보면 우스워진다. 온 세상을 컵 한 잔에 들이부어 마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욕심 때문에 을 계속 움직이게 된다. 


흐르는 것은 아름답지만 덧없고, 멈춰 있는 것만이 뚜렷한 의미가 있다면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은 움직이는 마음을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들이 현재를 연장하기 바라는 안타까움 혹은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리움이겠거니 하는 위안을 덧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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