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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경자 Jul 20. 2022

반갑다! 욘석아!

너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아주 희미한 보라색 선을 봤을 때였어. 사실 처음엔 잘 보이지도 않았지. 그런데 엄마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고, 그래서 난 보이지도 않는 보라색 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러고 나서 한 참을 들여다보니 정말 내 눈에도 그 희미한 선이 보이는 게 아니겠니. 그리고 그 뒤로도 너와 관계된 모든 것은 늘 이렇게 흘러갔어. 엄마는 빨랐고, 아빠는 늘 엄마를 통해서 너에 대한 것들을 알게 되었단다.


만우절. 유쾌한 거짓말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날. 아빠는 그날 아침을 잊을 수가 없다. 날이 갈수록 진해지던 보라색 선이 처음으로 희미해진 날. 그러면 안 됐었지만 부정적인 마음이 또 고개를 들었지. 심장은 쿵쾅거리고 마음은 초조해지면서 인터넷으로 얼마나 검색을 했는지 모를 거다. 테스트기의 품질이 균일하지 않고,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조금 달라질 수 있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불안감을 떨치기엔 부족했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당시의 엄마와 아빠는 늘 하루하루가 행복하면서도 유리 위를 걷는 기분이었어. 신난다고 폴짝 뛰었다가는 바닥이 와장창 깨져버릴까 봐 조심하게 되는 기분 말이야. 웃픈 일도 있었는데, 네가 우리에게 왔다는 기쁨에 너무 신이 나서 근처 대형몰에 갔던 날이야. 갈 때는 너에게 줄 옷도 사고, 신발도 사고, 인형도 살 생각이었는데, 막상 도착하니 아무것도 살 수가 없었어. 엄마와 아빠는 서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 섣불리 산 물건들이 슬픔의 단초가 되지는 않을까 말이야. 그래서 엄마 아빠는 소심하게 양말 하나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단다. 하하하.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어느새 보라색 선은 더 이상 진해질 수 없을 정도록 진해졌고, 이제는 초음파에 잡힐 정도로 네가 커져 버렸어. 흑백사진의 작은 콩알만 한 점이 귀여워 보이는 것은 어떤 기분인지 아니?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었지. 한 주 한 주가 지날수록 조금씩 커져가는 너의 모습이 그때의 우리에게는 세상 어떤 기쁨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단다.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저 내가 아닌 누군가의 건강을 바라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어. 이게 사랑이구나. 대번에 알게 되었지. 백 마디 말보다 너의 힘찬 심장소리 한 번에 사랑을 느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그거 아니? 너의 이름은 네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정해져 있었다는 것을. 엄마 아빠는 너를 만나기 위해 제법 긴 시간을 기다렸어. 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엄마 아빠에게는 너는 이미 우리 가족의 일부였거든. 아빠가 종종 찾아가는 성당에는 이런 글귀가 크게 적혀 있어. "나는 여러분들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네가 우리에게 오기 바로 전에도 엄마와 아빠는 그곳을 찾았단다. 그리고 그 글귀를 보면서 간절히 기도했지. 네가 혹시나 우리에게 찾아온다면 우리도 너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말이야.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라고. 그래서 네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지금을 즐기라고.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막상 아이가 태어나면 모든 계획은 무용지물이 된다고도 하더라고. 그럼 어떠니. 지금 엄마 아빠가 행복해하고, 너와의 시간을 상상하고,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다짐하는 시간들은 결코 헛되지 않을 거야. 너를 만나기 위해 오래 기다린 만큼 너의 존재가 더 빛나고 사랑스럽듯이 말이지.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건강하게만 태어나렴. 엄마 아빠는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너를 사랑하고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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