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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경자 Jul 20. 2022

엄마를 닮은 너

네가 점점 형체를 갖춰가고, 안정된 상태를 찾아가면서 엄마와 아빠에게는 아주 중요한 관심사가 생겼어. 그것은 바로 너의 성별에 관한 것이었지. 아들이냐, 딸이냐. 요즘 세상에 누가 아들과 딸로 차별을 하겠냐만, 그래도 이왕이면 아들이었으면, 혹은 딸이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인 것 같더라. 그런 면에서 엄마는 네가 딸이기를 몹시도 바랬단다. 아빠를 만나기 전까지 평생을 공주로 살아왔던 엄마였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엄마 눈치 좀 보고...)


아빠는 사실 네가 아들인지 딸인지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엄마는 자꾸 솔직하게 말해보라고 재촉을 했지만 정말 아빠는 상관하지 않았어. 만약 네가 아들이라면, 아빠와 같이 자전거를 좀 더 열심히(?) 탈 수 있어서 좋았을 것이고, 딸이었다면 엄마와 같이 이쁜 옷과 액세서리 들을 너에게 더 많이 선물해줄 수 있어서 좋았을 것이야. 사실 네가 아들이냐 딸이냐보다는 어떤 사람이냐가 너무 궁금했어. 아빠를 닮았을지, 엄마를 닮았을지. 혹은 엄마와 아빠가 아닌 친척 들 중의 누구를 닮은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더구나.


네가 세상에 존재하고 나서 16주가 지나면 초음파로 성별을 확인할 수가 있단다. 엄마와 아빠는 너의 성별을 좀 더 빨리 확인하기 위해서 무려 일요일 오전에 병원을 찾았고, 한 시간 반을 기다린 후에 너의 성별을 확인할 수가 있었지. 본격적으로 성별을 확인하기 전에 의사 선생님이 초음파로 너의 신체 사이즈를 먼저 확인하셨어. 근데 여기서 뭔가 조금 이상한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겠니? 너의 머리 크기와 배 둘레는 또래의 태아들에 비해서 무려 1주일이나 빠르게 자랐는데, 허벅지 길이는 또래 태아에 비해서 반대로 1주일이나 짧다는 거야. 아빠의 큰 키와 긴 다리를 생각하면 뭔가 심상치 않은 조합이구나 하는 불안한 예감이 엄습했지.


특히 15주부터 태동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엄마와 아빠는 네가 활발하게 움직일 때마다 아빠를 닮아서 다리가 길어서 태동도 잘 느껴지는 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생각이 한순간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단다. 발차기라고 생각했던 태동이 배치기라니... 그 배신감을 아니? 건강하게만 자라라고 했던 엄마와 아빠의 마음에 순식간에 욕심이 들어차는 순간이었다. 미안하게도 부모란 이런 존재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낄 수가 있었어. (너에겐 미안하지만 사실이니까) 큰 머리와 배 둘레, 그리고 짧은 다리를 확인한 의사 선생님이 초음파를 요리조리 보더니 이윽고 한 마디를 하셨어.


"아이가 엄마를 닮았네요?"


아빠는 순간 화가 났단다. 아무리 엄마가 아빠에 비해서는 키가 작다고 하지만, 아이가 다리가 짧다고 엄마를 닮았다니? 어떻게 아빠가 보는 앞에서 의사 선생님이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화가 나서 엄마를 쳐다보았는데, 엄마는 속도 없이 환하게 웃고 있는 거 아니겠니? 그제야 아빠는 또 한 발 늦게 알아차렸단다. 네가 딸이라는 사실을! 네가 딸이라서 기쁘다기 보다, 너를 좀 더 잘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를 거야. 형체를 갖춰가고, 심장이 뛰고, 팔다리와 눈이 생기고, 게다가 이제는 성별이 정해지면서 네가 우리에게 온다는 것이 더 실감이 되었던 것 같다.


좋은 것만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고 했다. 아빠는 줄 수 있는 게 기럭지 밖에 없다. 지금부터라도 잘 물려받도록 하거라. 엄마에게도 영양분을 잘 전달해주라고 일러 놓았으니 걱정 말고 남은 4달 동안 쑥쑥 크자!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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