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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경자 Nov 25. 2022

유리 빨대를 샀습니다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고 있는 요즈음, 플라스틱 빨대 대신에 옥수수로 만들었다는 PLA 빨대를 사용하다가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생분해성이니 친환경이니 하는 이 빨대가 사실은 친환경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기존 플라스틱보다는 분해가 용이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생분해되는 조건이 일반적인 환경에서 구현되기 어려운 조건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60도 이상의 고온이라던가, 특정 미생물이 많이 포함된 흙에서 분해가 된다던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상 생분해를 시키려면 또 이 빨대만 따로 수거해서 분해가 잘되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하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 리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럼에도 플라스틱보다는 나은 것 아니냐며 이 빨대 사용을 여전히 권장하기는 하는데, 내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내가 이 생분해성 빨대를 사용하면서 기대했던 수준의 효과가 전혀 아닐뿐더러 어떤 측면에서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우리가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않기로 사회적 합의를 하는 목적은 플라스틱을 줄이자는 것보다는 지구의 환경을 지키자고 하는 것인데, 플라스틱을 PLA로 바꾼다고 해서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다시 빨대 찾아 삼만리의 여정을 떠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친환경의 이면에 대한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카페에서 사용하고 있는 종이 빨대의 경우에도 실제 코팅 성분 때문에 재활용도 어렵고, 일반 쓰레기와 섞여있는 상태에서 부피가 작아 선별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이 빨대는 현재 소각 처리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플라스틱을 줄이는 대신에 새로운 방식으로 지구의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은 무조건 재활용 가능한 제품을 쓰자는 것이었다. 우리의 목적은 특정 소재의 사용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지구 환경에 가장 영향을 적게 주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생산 자체를 적게 할 수 있는 재활용 가능한 제품을 쓰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니 설령 PLA 빨대가 생분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제조/운송 과정에서 환경에 지속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재활용 가능한 빨대들을 찾아보니 각자 장단점들이 많았는데, 결론적으로 가장 무난한 것이 유리 빨대였다. 우선 스테인리스 빨대는 내구성도 좋고, 세척 및 유지관리도 너무 편했지만 차가운 음료를 주로 마시는 내가 쓰기엔 너무 열전도율이 높았다. 게다가 그 특유의 금속표면이 입술이 닿았을 때 약간 소름 돋는 느낌을 주는 것이 싫었다. 플라스틱 재활용 빨대는 플라스틱이라 패스했고, 실리콘 빨대는 먼지가 많이 붙는 것을 알기 때문에 또 제외시켰다. 그러고 남은 것이 유리 빨대였다. 속이 투명해서 세척도 확실하게 할 수 있고, 차가운 음료를 마실 때도 그렇게 차갑지 않고, 먼지도 많이 묻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유리 빨대는 깨진다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어서 깨지지 않고 단단하게 만든 제품을 여러 차례 검색해서 구입했다.


써보니 여러모로 만족스럽다. 유리라는 소재가 우리에게 친숙해서 입에 닿았을 때의 거부감도 전혀 없고, 생각보다 단단하고 두껍게 만들어져서 쉽게 깨질 것 같지도 않다. 투명한 유리 빨대로 음료가 올라오는 모습도 생각보다 재밌어서 여러모로 좋다. 이제 이걸 매일매일 꾸준히 사용하는 것이 진짜 친환경이라는 사실만 잊지 않으면 된다. 만들고 운송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것은 이것을 오래 쓰는 길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휴대폰의 경우에도 사용 중에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11% 수준이고, 생산/운송/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훨씬 더 많다고 한다. 그러니까 오래, 반복해서 쓰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친환경인 셈이다.


렇게 까지 이야기하면, 그깟 빨대 안 쓰면 되지 왜 이렇게까지 빨대를 고집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것은 빨대로 먹는 것이 더 맛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차가운 음료들은 컵에 입을 대고 마시는 것보다 빨대로 마시는 것이 더 맛있다. 입술에 차가운 음료가 닿으면서 감각이 자극되어 맛을 덜 느끼는 것인지, 혹은 지금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혀의 특정 부위로 음료가 직접 닿으면서 맛을 더 잘 느끼는 것인지 이유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빨대로 마셨을 때 더 맛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바리스타들의 경우 본인이 만든 음료를 시음할 때 반드시 빨대에 꽂아 마신다고 한다. 고객들이 마시는 환경과 동일한 환경에서 맛을 파악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친환경도 중요하고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도 중요한데 인간에게 맛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 거 같다. 그런 관점에서 소고기가 온실가스 발생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사실이 가장 무섭다. 고민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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