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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경자 Nov 22. 2022

쓰여진 꿈

이제는 가물가물한 수능 이야기

내가 수능 언어영역 전국 1등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출문제 분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아주 집요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방법은 이러했다. 역대 모든 기출문제에 대해서 해답지를 만드는 것이다. 이 해답지는 문제의 출제의도와 문제에서 확인하고자 하는 역량, 그리고 5개 보기 전체에 대해서 각각 정답과 오답 객관적인 이유를 하나하나 글로 적은 것이다. 다시 말해, 정답이 1번이라고 하면, 나머지 2번부터 5번까지가 정답이 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전부 하나씩 객관적 논거를 도출하여 글로 적는 셈이다. 이렇게 한 이유가 있다.


수학은 소위 말하는 규칙이 있다. 사칙연산으로 시작해서 집합이든, 미적분이든, 모두가 합의한 규칙이라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 규칙을 따르지 않은 풀이과정은 모두 오답이 된다. 따라서 풀이과정을 설명하는 방법이 명쾌하다. 그러니 문제가 잘못되지 않는 이상, 몇십만 명의 응시자들이 이을 제기할 수 없는 객관적이고도 분명한 풀이가 존재한다. 반대로 언어영역은 그렇지 않았다. 논리라는 것은 수학에서 말하는 풀이 규칙처럼 객관적인 규칙으로 표기를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감으로 문제를 푸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나는 그 부분이 가장 이상했다. 언어영역도 분명히 수학과 같이 수십만 명의 응시자들이 푸는 시험이고, 당연히 거기엔 정답과 오답이 존재한다. 그 말은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이견을 가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객관적이고 타당한 풀이가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각자가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객관적 사유가 없다면, 그것을 시험 문제화하여 출제할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결국 핵심은 두 가지였다. 언어영역의 모든 문제에는 수학과 같이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이론의 여지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객관적인 풀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풀이를 내가 완벽하게 이해하여야 한다.  


쉽지 않았다. 말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당연히 정답인 것을 굳이 말로 하나씩 설명하려고 하니 세상 불필요한 일처럼 느껴졌다. 반대로 둘 다 정답인 것 같은 경우에는 말 그대로 어려웠다. 그냥 이게 더 답에 가까운가 보다 하고 넘어가던 것들을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글로 적으려니 막막했다. 말로는 그럴듯한데 글로 적으니 하나도 말이 안 되었다. 그럼에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왜 답이 되고 답이 되지 않는 지를 수십만 명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으로 구분한다고 생각하고 해답지를 만들었다. 그렇게 십여 년 치의 기출문제 수백 개에 대해서 그 작업을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재밌었던 것 같다. 어느새 여름 방학이 끝나 있었다.


2, 3달 정도의 시간을 통해서 기출문제 분석을 하고 나니 놀라운 일이 생겼다. 시중에 나온 모의고사 문제를 푸는데 딱 봐도 논리적인 허점이 너무도 많았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면 문제도 되지 못할 수준의 문제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껍데기만 그럴듯하게 흉내를 냈지만, 기출문제에 비해서는 수준이 너무 낮았다. 출제 의도도 불분명했고, 정확하게 사고의 한계도 정해주지 않았으며, 논리적으로 정답인 사유가 명쾌하게 정리되지도 않았다. 런 문제에 익숙해져 있다가 수능을 치면 더 헷갈릴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여간 그런 방식의 학습법이 효과적이었음은 분명하다. 나는 수능에서 어이없는 실수로 가장 배점이 작은 문제 하나를 틀렸고 그해 언어영역 전국 1등을 했다. 덕분에 신문 기사에도 짤막하게 한 줄 이름을 올렸다. 내가 이 과정을 통해서 느낀 것은, 우리의 생각은 생각보다 비논리적이고 엉망진창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해답지를 글로 쓴다는 근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만큼 머릿속을 명쾌하게 정리하는 효과가 있었다. 머릿속으로 이게 맞을 거야라고 대충 넘어가는 것은 마치 술 취한 사람이 사칙연산을 통해 수학 문제를 푸는 과정과도 비슷했다. 하나도 말이 안 되는 것을 마치 말이 되는 것처럼 착각하고 넘어가는 것이었다.


글로 쓴다는 것은 단순히 표현한다는 것을 넘어, 생각을 명확하게 구체화하고, 생각과 생각을 논리구조로 끈끈하게 연결시키고, 이 것을 하나의 목표를 위한 도구로써 정제하여 사용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때 처음 느꼈던 것이다. 그전까지의 나는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던 셈이다. 막연한 생각, 그러나 막상 글로 쓰려면 아무것도 쓸 수 없는. 그게 나였다. 이때의 시간들은 나에게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소위 말하는 메타인지에 대한 인식을 심어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후 나는 늘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하려고 노력했고, 내가 학습한 논리적 사고 틀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것들은 늘 의심하고 내가 모르는 부분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그런 의미도 있다. 나는 전문 작가에 대한 꿈도 없고,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끊임없이 글을 씀으로써 내가 하는 막연한 생각을 경계하는 중이다. 술 취한 사람의 사칙연산 같은 일을 막기 위함이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최근에 꿈이라는 것을 글로 써야 될 필요를 느끼고 있다. 행복, 많은 돈, 좋은 직장이라고 하는 꿈에 대한 생각들이 과거의 내 머릿속의 막연한 생각처럼 대충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꿈들을 글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쓰여진 꿈은 훨씬 구체적이고, 명료하고, 내가 현실에서 실천하기에 적합한 방식일 것 같다. 마치 20여 년 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PS. 참고로 이과였던 저는 그 해 수능에서 언어영역과 다르게 수학에서 형편없는 점수를 받아 지원한 모든 대학에서 후보 번호를 받고 최종 탈락했습니다. 수학을 그렇게 했었어야지. 저는 믿기지 않겠지만 초등학교 입학 전에 혼자 한글을 뛰어넘는 문자를 만들겠다고 원고지에 알파벳을 그렸고, 아주 어린 시절 출판사를 만들어 명절마다 A4 용지를 접어 책을 출판하여 친척들에게 배부하기도 하였습니다. 중학교부터는 추리소설과 만화를 그렸고, 고등학생 시절 첫 해외여행을 다녀온 여행기로 A4 수십 장을 썼던 저는 그러나 기술을 배워야 먹고 산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이과로 진학하였기 때문에 수학은 결정적인 결격 사유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떻게 저떻게 잘 살아남아서 현재 이과생들이 득실거리는 회사에서 기획업무, 그러니까 보고서 작성을 업으로 잘 먹고살고 있습니다. (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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