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경자 Dec 09. 2022

세입자에게 강제 퇴거 명령을 내렸습니다.

좋은 말로 할 때 순순히 나오시지...

저에게는 세입자가 한 명 있습니다. 문제는 세입자가 계약 기간이 지났음에도 계속 집을 점유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처음에는 계약일 전에 강제 퇴거 조치를 하기로 했는데, 세입자가 거의 물구나무서기를 하면서 사정하는 통에 계약일까지 기다려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게 바로 오늘입니다. 그런데 끝내 집을 비울 생각조차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단단히 마음을 먹고 와이프와 어제 강제 퇴거 명령을 내렸습니다.


사실 퇴거를 위해서 여러 방법을 총동원했습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불편하라고 집 근처에서 시끄러운 노래를 틀기도 했고, 수시로 창문을 두드리며 잠을 깨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집 전체를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집이 그렇게나 좋은지 꿋꿋하게 버티는 세입자가 참으로 야속합니다. 저도 어디 가서 사람 좋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지만 이번은 경우가 좀 다릅니다. 이번 주까지 퇴거를 하지 않으면 명령이 아니라 조치에 들어가야겠지요.


퇴거 조치는 무시무시합니다. 우선 세입자가 사는 공간에 몰래 들어가서 침실을 제외한 모든 공간의 문을 잠가 버리는 것입니다. 집 안의 공간이 좁아지니 답답해서라도 퇴거를 하겠지요. 그래도 나오지 않는다면 강제로 집의 문을 열고 세입자를 끌고 나오는 수밖에 없습니다. 잔인하다고요? 어쩔 수 없습니다. 계약은 계약이니까요. 세입자에게 미리 충분히 경고를 했습니다. 강제 침입을 할 사람은 제가 아니라고요. 무시무시한 도구를 든 대머리 아저씨가 될 것임을 분명히 알렸습니다.


와이프는 오늘 무시무시한 대머리 아저씨를 만나러 갑니다. 대머리 아저씨는 저희에게는 선한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응대해주시지만 세입자에게는 그러지 않을 것을 압니다. 굳은 표정과 잔뜩 긴장한 손놀림으로 세입자를 무사히 이 세상 밖으로 끌어내 주실 분입니다. 그분이 강제로 끌어내지 않도록 세입자가 스스로 집 밖으로 나오길 간절히 고대해봅니다. 강제 퇴거는 후유증이 꽤 길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세입자를 받을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10개월이 지났습니다. 하루빨리 세입자의 얼굴이 보고 싶습니다. 세입자의 침을 닦아주고 싶고, 대소변을 치워주고 싶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싶고, 칭얼거림을 달래주고 싶습니다. 세상 모든 불필요한 감정들에서 벗어나 누리는 온전한 행복을 세입자와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대머리 아저씨의 강제 퇴거 조치 이전에 마지막으로 읍소합니다. 똑똑똑. 아가씨! 이제 그만 나오세요! 엄마 아빠 목 빠져요!

매거진의 이전글 모아이 석상 같은 딸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