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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경자 Nov 21. 2022

모아이 석상 같은 딸에게

안녕, 아빠야. 이제 너를 실물로 볼 날이 2주도 남지 않았구나.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다고 했는데, 네가 왔을 때 마음에 들어 할지는 모르겠다. 초보 엄마 아빠가 행여나 큰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늘 걱정이 된단다. 아빠가 짧은 인생을 살면서 배운 것은, 세상 모든 일에는 서툼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야. 한 번에 잘하는 건 없더라고. 설령 한 번에 잘했더라도, 나중엔 꼭 한 번 실수를 하게 된단다. 그러니 처음 서툼에서 잘 배워두고 익숙함으로 넘어가는 그 과정이 어쩌면 꼭 필요한 셈이지. 그러니 조금 서툴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는 엄마 아빠를 이해해주렴.


네가 처음으로 우리에게 왔을 때, 우리는 너의 건강 만을 바랐었는데, 어느 순간 너에게 바라는 것들이 하나씩 들이차는 걸 느낀단다. 잘 크고 있는지, 머리가 다리에 비해서 너무 큰 건 아닌지부터 시작해서 얼마 전에는 네가 거꾸로 돌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바라는 마음이 생겼어. 보통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가 되면 거꾸로 돌아서 눕는데, 너는 끝내 돌아 눕지를 않았거든. 엄마는 자연분만을 희망했는데, 이렇게 되면 수술밖에는 방법이 없어서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모른다. 조선시대였으면 큰일 날 일이라며 협조 요청하는 목소리는 너도 들었겠지?


엄마가 자연분만을 희망하는 이유는 딱 하나였단다. 바로 출산 후에 바로 너와 뜨거운 스킨십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지. 자연 분만은 엄마 몸에 부담도 적고, 입원실에 4박 5일이나 있어야 하는 수술에 비해서 거동도 자유롭기 때문이야. 물론 당연히 수술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고. 하지만 수술이 꼭 나쁜 것은 아니란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진통에 대한 걱정도 없고, 미리 날짜를 정해서 너를 만나게 되니 조리원이나 휴가 같은 일정을 다 정해둘 수 있어서 그건 또 나름 편한 부분이 있었어.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수술 날짜까지 편하게 쉬고 있거라. 일찍 나오면 이제 곤란하단다.


이제야 수술 날짜가 정해졌지만, 사실 그전까지는 네가 언제 돌아 누울 것인가가 굉장한 관심사였어. 엄마는 너의 태동 위치가 조금이라도 바뀐 것 같으면 돌아누운 건가 하면서 기대를 가졌고, 병원 가서 변하지 않는 모아이 석상 같은 너의 얼굴 위치를 확인하고서는 시무룩한 일이 몇 달이나 반복되었단다. 아빠는 그것과 별개로, 모아이 석상 같은 너의 초음파 얼굴이 너무도 웃기고 귀여워서 그 과정마저도 너무 즐거웠다. 물론 엄마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끝내 돌아눕지 않는 너의 고집이 엄마에게서 왔니, 아빠에게서 왔니 하면서 티격태격하는 것도 우리의 즐거움 중에 하나였어.


모아이 같은 너의 얼굴을 보면서 아빠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조금이나마 미리 느낄 수가 있었단다. 건강하기만을 바랬지만, 부모의 욕심은 어느 순간 들이차게 되는 것을 말이야. 주 조금만 바뀌었으면, 이것만 조금 더 잘해주었으면, 하는 그 작은 마음들이 어쩌면 부모와 자식을 세상에서 가장 서먹한 사이로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그래서 더욱 하게 되었단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큰 틀에서 너를 온전히 믿고 지켜볼 수 있는 부모가 되도록 노력 하마. 그러니 너도 결코 돌아눕지 않는 그 모아이 석상 같은 뚝심으로 이 세상을 온전히 부딪치며 살아보도록 해라. 대신 처음은 늘 서툴기에 조금 아플 수는 있다. 많이 아프면 달려오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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