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맘카페의 증언이나 소아과 의사들의 조언에 따르면 소위 말하는 4개월 원더윅스가 가장 고난의 시기라고 한다. 아이들이 갑자기 이상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 변화의 크기가 가장 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시간에 맞춰 잘 자던 아이가 갑자기 한 시간 간격으로 깨어나서 울거나, 분유를 거부하기도 하고, 이유 없이 하루 종일 짜증을 내면서 자지러지게 울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아이가 성장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긍정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하루아침에 성격이 포악스러워진 아기가 너무나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 아기는 평소 잘 울지도 않고 순한 성격에 2개월부터 시작한 수면교육도 잘 정착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8시가 되면 칼 같이 잠들고, 새벽에 한 번 정도 깨어서 분유를 먹고 다시 아침까지 쭉 자는 소위 말하는 모범생 아기였다. 배고플 때나 졸릴 때 조금 투정을 부리긴 해도 분유를 물리거나 안아서 노래를 불러주면 방긋방긋 웃음을 짓는 아기였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순하고 착한 아기의 아빠라니. 매 순간이 감동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4개월이 되자 이런 아기는 한순간에 사라지고, 마치 지킬과 하이드처럼 전혀 다른 성격의 아기가 나타났다. 아니 익룡이 나타났다.
첫 시그널은 100일이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외할머니와 이모할머니, 친척들이 놀러 온 날이었는데, 이상하게 짜증을 내면서 울기 시작했다. 그러다 또 좀 괜찮아지는 것 같았는데, 할머니 두 분이 장난감을 가지고 아기와 놀아주던 때에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더니 그 뒤로 잘 때까지 울고, 평소보다 잠도 굉장히 힘들게 들었다. 우리는 그때만 해도 그것이 낯가림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고, 그저 많은 사람들이 와서 놀랬다, 혹은 장난감이 너무 자극적이었다 정도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이 비극의 서막이었다.
그다음부터 짜증과 울음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져갔다. 조금만 눕혀도 바로 울음을 시작하고, 울음이 길게, 강하게 지속되었다. 분유를 물려도 그치지 않았고, 심지어 품에 안아도 소용이 없었다. 평소 잘 먹던 분유도 들쑥날쑥 이었다. 집 근처 쇼핑몰을 다녀오면 꼭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울었는데, 평소 같으면 장난감을 흔들거나 하면 진정이 될 상황에서도 거의 기절할 듯이 우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이때부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원더윅스라고 하는 급성장기가 왔구나. 이게 그 무서운 4개월 원더윅스구나.
그 뒤로는 본격적으로 매운맛 익룡 육아가 시작됐다. 목욕을 할 때면 거의 숨이 넘어가듯 울고, 자기 전까지 울었다. 특히 저녁에 졸릴 시간에 짜증이 극에 달했는데, 수면교육도 다 소용이 없고, 안아서 한참을 달래야 간신히 잠에 들었다. 이전에는 저녁에 눕히면 새벽까지 쭉 잤는데, 이후로는 꼭 잠들고 한두 시간 안에 다시 깨어서 한참을 달래야 잠을 이어서 잤다. 터미타임을 시키려고 들면 내려놓기 전부터 눈치를 채고 기절할 듯이 울기도 했다. 뭐라고 말만 하면 울고, 등만 두드려도 울고, 손만 건드려도 울고, 아주 그냥 포악하기가 이를 데 없는 익룡 한 마리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 이주가 지나고, 영유아 검진 날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갔는데, 상대적으로 기분이 좋은 대낮에 자고 일어나서였음에도 의사 선생님 앞에서 엄청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의사 선생님이 대뜸 낯가리네요?라고 하셨다. 우리는 그제야 아기가 낯을 가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때까지는 믿지 않았는데, 검진 후에 쇼핑몰에서 수유를 위해 수유실에 들어갔을 때도 주변 사람들을 보고 자지러지는 아기를 보고서야 낯을 가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친척분들이 또 집에 오셨는데 확실히 낯을 가리는 모습을 보였다. 4개월 원더윅스에 낯가림까지. 나의 멘탈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아기가 아무리 울어도 평온한 엄마와 달리 아빠는 정신이 나가는 기분이다. 특히 안아서 달래는 데도 몸에 힘을 뻣뻣하게 주면서 자지러지면 멘탈이 바사삭 부서진다. 어제는 정신이 나가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엄마한테 아기를 넘기고 돌아서는데 와이프가 한 참을 웃는 것이었다. 왜냐고 물어보니 북한 김정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과 너무 흡사해서 웃었다고 했다. 비유가 너무 적절했다. 터덜터덜 방을 나와서 조용히 젖병을 닦았다. 4개월 원더윅스와 낯가림의 콜라보레이션은 순한 우리 아기를 익룡을 만들어 놓았다.
사실 서두에도 이야기했지만, 4개월 원더윅스나 낯가림은 아이가 정상적으로 잘 성장하고 있는 증거라고 한다. 원더윅스라는 것이 감각기관이 발달하면서 자기 몸과 주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고, 낯가림도 인지능력이 생겨 부모와 낯선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빠의 멘탈 털림과는 별개로 아이는 무럭무럭 잘 크고 있는 것이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런 긍정적인 생각과 더불어 언젠가는 끝나겠지라는 희망 하나로 어떻게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아직 잠은 잘 자니까 견딜만하기도 하고.
아무튼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아이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 보았다. 우선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한 번 익룡 모드가 발동되면 그때부터는 아주 사소한 자극에도 익룡 소리가 발사된다. 익룡 모드가 발동이 되면 분유도 소용이 없고 한참을 안고 달래야 간신히 진정이 된다. 그러나 이것도 일시적인 것이고, 다시 눕히거나 자극을 주면 바로 익룡모드가 재개가 된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것은 익룡모드 발동 자체를 막는 것이다. 한 번 익룡이 되면 그날은 끝이라고 봐야 한다. 그래서 아이가 압력밥솥처럼 숨소리를 거칠게 내면서 섭섭함을 표현하기 시작하는 순간을 잘 캐치해서 상황을 바꿔주거나 관심사를 돌려주어야 한다.
익룡 모드 발동에 가장 큰 원인은 등을 대고 눕는 것이다. 사실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머리를 뒤로 젖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품에 안고 있더라도 옆으로 눕혀서 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저귀를 갈거나 터미타임을 시킬 때에도 압력밥솥 소리가 나면 일단 안아서 진정을 시키거나 다른 방법을 이용해서 관심을 돌려주어야 한다. 가장 위험한 것이 목욕인데, 아직 서서 목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머리를 감을 때 어쩔 수 없이 머리를 뒤로 젖히게 되는데 이때 사달이 난다. 그래서 엄마가 신생아 용 샴푸캡을 따로 주문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터미타임이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터미타임을 엄청 싫어한다. 이번 영유아 검진에서 의사 선생님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터미타임을 하는 힘이 약하다고 하셨다. 더 자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터미타임을 좀 더 많이 시켰는데, 어느 한계가 넘어가면 힘들어서 그런가 짜증을 내고 익룡모드가 발동이 되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터미타임을 시키되 압력밥솥 모드가 발동이 되면 눕혀 주었다. 신기한 게 터미타임을 하다가 눕히면 그렇게 싫어하지 않는 것이 아무래도 눕는 것 자체는 싫지만 터미타임을 하는 것보다는 몸이 편해지니 그런 것 같다.
마지막 익룡 모드 발동 원인은 저녁 시간이다. 아이에게 저녁은 하루의 피로가 집중되는 시간이다. 졸리기도 하고 배고프기도 하니 짜증이 많이 나는 시간이다. 우리는 전에 저녁에 목욕을 시켰는데, 그러다 보니 더더욱 악효과가 났던 것 같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는 목욕을 낮에 시키고 저녁 시간에 산책을 나섰다. 낯가림을 시작하면 하루에 두 번 산책을 시켜서 자극을 많이 주는 것이 좋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도 했고 말이다. 이렇게 익룡 모드 발동 방지를 위한 여러 전략을 종합한 결과, 어제 처음으로 다시 순한 맛 아기로 돌아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녁 먹는 동안도 울지 않고, 얌전히 방긋방긋 웃으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과연 이 것이 일시적인 것인지, 혹은 정말 효과가 있을 것인지, 오늘 저녁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