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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경자 Sep 09. 2021

내가 올해 죽을 확률

사망원인 하 가장 많이 떠올리는 것이 무엇일까? 교통사고와 암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교통사고로 죽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일 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이 5천 명 정도 되니, 1만 명 중 1명이 매해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있다. 퍼센트로 표현하면 0.01%다.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자까지 포함하면,  만 명 중에 60여 명으로 크게 늘어난다. 퍼센트 표현하면 0.6% 정도 된다. 이 번에는 암을 보자. 일 년에 암으로 죽는 사람의 수는 8만 명. 만 명 중에 16명이 사망한다. 0.16%다.  원인을 더해서 일 년에 죽는 사람은 만 명 중에 17명 정도 된다.


연령별로 보면 더 의미가 있다. 30대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사망하는 사람의 비중은 만 명 중에서 7명 정도 된다. 40대가 넘어서면 크게 증가하는데, 만 명 중에서 15명 정도. 퍼센트로 표현하면 0.15% 정도 되는 셈이다. 50대는 만 명 중에 30명이 넘는다. 0.3%다. 60대는 만 명 중에 70명 정도 된다. 0.7%다. 이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면 잠실 야구장을 떠올려 보자. 최다 3만 명 관중이 들어찬 경기장이 있다. 순수하게 확률로만 보면 30대는 이 중에서 20명 정도를 골라내는 것이고, 40대는 45명, 50대는 90명, 60대는 210명을 선발하는 확률과 같다. 서 언급한 교통사고와 암만 가지고 보면, 잠실 야구장에서 51명을 선발하는 확률과도 같다.


적인 논란이야 있겠지만, 단순히 수학적으로 저 확률을 이용해서 경품 행사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만원 관중이 들이찬 야구장에서 100명의 관중을 선발해서 경품을 지급한다고 하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왠지 내가 당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을 것이다. 들뜬 마음으로 행운권을 경품 추첨 상자 안에 넣고, 사회자의 발표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매주 내가 구입하는 로또의 1등 확률은 고작 814만 분의 1에 불과한대도, 나는 매주 그 작은 종이에 희망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유전적 원인이나 사고 발생에 영향을 주는 환경적 요인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앞선 계산에서 보다시피 매해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 좀 전에 언급한 로또 1등의 기준으로 바라보면, 실제 삶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하지 않은 곳임을 금방 알게 된다. 그런데도 나는 그 사실을 종종 잊고 산다. 수학적으로 확률은 행운이나 불행이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임에도 말이다.


나는 늘 아직 일어나지 않은 행운만 기대하고 그 행운이 일어날 확률을 계산하면서 살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잃어버릴 확률에 대해서는 그리 큰 걱정이 없다. 나는 언제나 건강할 것 같고, 천수를 누릴 때까지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하는 가족들도 모두 그럴 것 같다. 요즘은 되려 늘어나는 기대 수명이 걱정이라면 걱정인 시대다. 내일도, 다음 달에도, 내년에도 이런 나의 삶이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산다. 그 확신 위에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갖기 위해 늘 분투하면서 산다.


사실 그럴 법도 한 게, 통계라는 것은 전체적인 집단을 기준으로 봤을 때 의미가 있는 숫자일 뿐이고, 대다수의 사람들 개개인에게는 이 모든 확률은 전혀 의미 없는 숫자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개개인으로 한정해서 보면, 확률보다는 이 일이 나에게 일어났냐 혹은 일어나지 않았냐의 두 가지 사건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일어나지 않은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집단에서는 작은 확률들이 실재보다 과소평가받기 쉽다. 물론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죽음을 외면하고 싶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비관론적인 생각을 한다거나, 죽음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고자 함은 아니다. 다만 나는 내가 누리고 있는 삶이 생각보다 그리 안정적인 것이 아니며, 이 토대가 그리 튼튼하지 않다는 것을 상기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행운이 올 확률과 같은 확률로, 아니 훨씬 더 높은 확률로 내 삶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음을 머리로 이해하고 싶을 뿐이다. 이를 통해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느라 삶의 소중한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막고, 하루하루 내가 누리는 일상의 소중함을 되새기면서 살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까 좀 쉽게 말하면,  매일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뜨면서 '오늘도 살아 있어서 너무나 감사합니다'라는 마음을 갖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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