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경자 Feb 07. 2022

예능 같은 삶

때때로 진지충이 되는 나에게

요즘 티비는 볼 게 없다. 채널을 한 참 돌리다가 결국 정착하는 것은 늘 뻔한 포맷의 예능 프로그램 재방송이다. 뻔한 포맷, 뻔한 게임, 뻔한 출연진과 제작진. 그런데 또 이만한 게 없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음식 몇 개를 두고 벌이는 경쟁과 우스꽝스러운 실수와 오답들을 보고 있으면, 이게 뭐라고 또 재미가 있다. 복잡한 생각 없이 그저 단순하게 웃을 수 있는 게 이런 유형의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가 싶다.


게임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들에는 누구나 아는 비밀 아닌 비밀이 있다. 바로 게임의 승패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가장 큰 목적은 웃기는 것이지, 누가 게임을 잘해서 이기는 가가 아니다. 게임은 그저 보다 자연스러운 웃음을 이끌어 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런데 제작진이나 출연진, 시청자들은 이를 종종 잊곤 한다. 사실 그렇기에 더 재미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게임을 예능에서 활용하는 것은 여러모로 영리한 작전이다. 별 것 아닌 보상으로도 출연자들은 쉽게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어느새 경쟁구도에서의 승부에 몰입하게 된다. 출연진들의 진지한 모습은 좀 더 진정성 있는 웃음을 만들어내는 데에 효과적이다. 시청자들 또한 경쟁구도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면서 긴장감을 형성하게 되고, 출연진들의 오답이나 실수는 더욱 큰 반전으로 작용해서 긴장을 무너뜨리는 웃음이 된다.  


이렇듯 웃음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써 게임이 있고, 이 게임에 적당히 몰입하는 것은, 웃음을 달성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수단인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하게 되는 경우다. 원래 추구하고자 했던 것을 잊고,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하게 되면, 재미는 커녕 분위기 싸해진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사실 우리 대부분이 살면서 놓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무엇을 위해 게임을 하는가? 게임이 주는 보상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경쟁으로 인해 우린 종종 이것을 잊고 산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삶의 행복이라는 대전제에서 보면 대부분 수단에 불과한 것들이다. 결국 인생은 행복해지기 위한 과정이고, 그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저마다의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의 행복은 그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행복한 감정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행복의 가치를 잊고, 게임에 매몰되어 되려 더 불행한 삶을 향해 나아간다. 삶의 분위기가 싸해지는 것이다. 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얻으면 인생이 행복한가? 그렇지 않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게임을 이겼다고 재미가 유발되는가? 좋은 직장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감, 같은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유대감에서 행복은 온다. 좋은 직장은 그 정도의 동기부여일 뿐이다. 원하던 목표를 달성하지 않아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다른 목표를 세우면 되기 때문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게임만 줄창하는 경우가 있던가.


살면서 중요한 것은 이런 맥락적인 사고에 있다. 나의 행복과 이를 위한 삶의 모습, 그리고 그걸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내가 하고 있는 게임. 이들 간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일 아침 안부를 나누기 위해서 오가는 질문들은 사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너무 그 질문에 매몰되어 구구절절 대답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또 반대로 그렇다고 너무 그 질문을 가볍게 여길 것도 아니다. 적당히 몰입해서 대화하고,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돈과 권력이 많으면 행복한가에 대한 질문에도 답할 수 있다. 돈은 가족오락관의 포인트 같은 것이다. 많으면 기분이 좋고 우쭐하다. 그리고 폭죽과 팡파레를 얻을 수 있는 기회도 된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모두 사라진다. 우승자의 트로피 보다, 프로그램 내내 기분 좋게 웃고 즐기던 시간들이 원래의 목적이었음을 우리는 모두 안다. 그러니 내가 하고 있는 게임에 최선을 다하되, 그 결과에 너무 연연해하지 않아도 된다. 애초에 우리가 원하는 것은 게임의 승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에 출연한 한 댄서는 가장 먼저 탈락했음에도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2등을 해야 더 성공한다는 속설도 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1등을 해야 성공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만, 실제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 이런 사실을 꿰뚫고 오디션 프로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경쟁에서 벗어나서 늘 즐겁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또 그런 사람들이 대중의 눈을 사로잡는다. 그러니 게임에 너무 매몰되지 말자. 규현이 게보린을 외친 것처럼, 조금 더 유쾌하게 살아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올해 죽을 확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