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경자 Feb 28. 2022

예지몽은 정말 존재하는가

나는 예지몽을 믿는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적부터 예지몽을 경험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은 우리 어머니의 꿈이었지만 말이다. 어머니는 한때, 그러니까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에 집중적으로 예지몽을 꾸셨다. 당시 어머니의 꿈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했다. 꿈의 내용이 추상적이거나 어쩌다가 맞는 수준이면 우연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지몽은 번번이 맞았고, 그 내용도 단순히 끼워 맞추는 식도 아니었다.


가장 소름 돋았던 순간은 나의 수능 성적이 발표되던 날이었다. 그날 아침에 나는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꿈에서 봤다며 나의 수능 점수를 말해주었다. 당시만 해도 원점수는 가채점으로 알 수 있었지만, 실제 입시에 활용되는 점수는 응시자들의 점수 분포를 가중한 표준점수였다. 이 표준 점수는 당연히 공식 발표 전에는 예측만 할 뿐 정확히 알 수 없는 점수. 당연히 입시 전문가도 아닌 우리 어머니께서 알 수 있는 점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꿈에서 보셨다며 정확하게 1의 자리까지 수능 점수를 말해주셨다. 당시 내가 가채점을 통해서 알던 점수와는 너무나 차이가 많이 나는 점수였다. 나는 그 점수는 절대 나올 리가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당시 대학교를 다니다가 다시 수능을 친 형의 원점수를 고려하면 형은 그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형의 원점수는 나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꿈에서 분명히 봤고, 중앙일보에 나의 이름과 점수가 나와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런 일은 없고, 아마 형의 점수면 점수겠지 하면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수능 성적표를 받는 순간. 난 아직도 그날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성적표에는 정확히 그 점수가 적혀 있었다. 당시 나는 이과였음에도 불구하고, 수학을 매우 못했는데, 반대로 언어영역에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얻었다. 덕분에 표준점수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가중치를 받았고, 어머니께서 꿈에서 본 그 점수가 나왔던 것이었다. 어머니께 전화를 하니, 어머니는 웃으면서 형도 그 점수가 나왔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음날 중앙일보에는 나의 언어영역 표준점수가 전국에서 가장 높다는 내용의 짧은 기사가 떴다. 꿈은 그대로 다 맞은 것이었다.

 

자식들의 중요한 순간이 어느 정도는 정리되어서 그랬던지 그 뒤로 어머니의 꿈은 점점 줄어들었다. 가끔 꿈을 꾸기는 하셨지만 맞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나의 취직을 앞두고 몇 번 또 의미심장한 꿈을 꾸기는 하셨는데, 예전에 비해서 구체적이거나 명확한 메시지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중요한 순간에 어머니가 꾸시는 꿈은 항상 의미가 있었다. 그러니 어머니가 또 꿈을 꾸셨다고 하면 일단 우리 집 가족들은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나도 그런 어머니의 자식인지 가끔 그런 꿈을 꾼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뭔가 직감 같은 것이 발동하는 순간이 있다. 처음 느낀 것은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조용하던 집에 전화벨이 울렸다.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나는 전화벨이 울리자마자 갑자기 그 전화가 고모에게서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런 느낌이 났다. 그리고 어머니가 한참 통화를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나가서 물어보니 역시나 고모였다. 그런 순간들은 살면서 종종 있었다. 어머니의 꿈이 정말 현실세계를 넘어서 뭔가를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오는 것이라면, 나의 꿈은 뭔가 징후 같은 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정도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른바 무의식의 빅데이터 같은 것이다. 내가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무의식이 느끼는 낌새 같은 것이 있을 터였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어떤 특정한 사건의 발생을 예감하게 되고, 그런 것들이 이른바 꿈에서 추상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처음 입사 면접을 보고 와서 탈락을 통보받고 펑펑 우는 꿈을 꾼 적이 있었는데 그 일도 실제로 일어났다. 아마 의식은 합격을 간절히 기원하였을지 몰라도 무의식은 그날의 모든 분위기와 정황을 빅데이터처럼 분석해서 탈락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물론 어머니의 꿈은 이런 무의식의 빅데이터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구체적이고 명확했으니 논외로 한다.


어제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친구가 로마에서 사다 준 십자가상을 떨어뜨렸다. 십자가상은 멀쩡했는데, 아래 받침 부분이 그만 부러져 버렸다. 지난번에 신혼여행에서 사 온 거북이 장식의 머리가 부러진 날, 라이딩을 나갔다가 나무에 기대어 둔 자전거가 넘어졌고, 마침 그 아래 돌덩이가 있어서 카본 프레임에 크랙이 나 버린 사건이 기억났다. 십자가 상이 부러진 것도 그런 불운한 일의 징후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덜컥 겁이 났다. 그렇게 잠들었는데 어젯밤 꿈에서 역시나 자전거 프레임이 접히는 꿈을 꿨다. 바닥에 그냥 내려놨는데 프레임이 구부려져 버렸고, 열심히 손으로 폈는데 어떻게 할 수 없는 내용의 꿈이었다.


오늘 아침, 회사 출근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한참 가고 있는데 요즘 출퇴근용으로 쓰는 접이식 미니벨로의 핸들 포스트 부분의 고정이 풀렸다. 약한 오르막에서 일어나 댄싱을 치려는 순간 핸들이 안쪽으로 접히면서 그만 와당탕 넘어져 버렸다. 왼쪽 무릎이 크게 바닥에 부딪쳤고, 바지는 무릎 부분이 다 찢어져버렸다. 그리고 바닥에 크게 굴렀다. 핸들 포스트의 고정 상태는 문제가 없었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서 걸쇠 부분이 고정이 헐거워진 모양이었다. 갑자기 신기했다. 아마도 나의 무의식은 이 자전거의 위험 요인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십자가상이 떨어진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계속 반복되는 일들이 그저 단순한 우연인 것인가. 신기한 생각이 든다.


사실 불길한 꿈을 꾸고, 그것이 우리 몸에 필요 이상의 긴장과 불안을 가져와서, 실수를 유발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악몽과 불행의 상관관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좋은 방법이다. 악몽은 무의식적으로 불안의 표현이고, 이는 결국 현실에서 나의 행동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같은 일은 그것으로도 설명이 어렵다. 자전거의 핸들 포스트는 평소와 다름없이 고정이 되어 있었고, 이것은 자전거를 조작하는 나의 실수가 개입될 여지가 없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물론이 모든 것이 다 우연의 일치 일 수 있다. 그저 십자가상은 떨어진 것이고, 마침 지난번 카본 프레임의 크랙이 생각나 그런 꿈을 꾸었고, 또 마침 출근길 자전거는 낡아서 핸들이 접힌 것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예능 같은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