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분수령

by 배경자

세상을 완전히 바꿔버린 오델로의 성장이 멈춘 것은 출시 후 약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오델로는 천만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하게 되었으나 신규 회원 가입은 정체되어 있는 상태였다. 점차 사람들은 개인정보를 넘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게다가 오델로의 뒤에 내가 속했던 회사가 있다는 사실을 애초에 숨길 수가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오델로가 사용하는 여러 인프라들은 회사의 도움을 받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럼에 되려 보안의 유지 측면에서 유리한 점이 많았지만, 빅브라더의 출현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들도 늘어갔다. 특히 여러 음모론자들이 문제였다. 이들의 주장은 터무니없었지만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데는 효과적이었다.


사람들이 오델로에게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을 의지할수록, 오델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늘어가는 것은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에게 가지 않은 길이란 매혹적인 것이었다. 오델로를 통해서 좋은 선택을 내렸다는 안도감보다는, 오델로로 인해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의심과 미련이 남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장기적인 관점으로 선택을 보려 하지 않았다. 단편적으로 이득과 손해를 따졌고, 눈앞의 이득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고자 했다. 아무런 설명 없이 그저 사용자가 제시한 선택지를 고르는 방식의 오델로는 어쩌면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더욱 부추기는 꼴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델로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대부분은 자영업자들이었다. 오델로가 추천하는 메뉴, 추천하는 음식점으로만 주문이 몰려, 새로운 식당을 개업해도 손님을 유치하기 힘들다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일부는 사실이었다. 오델로는 data가 없는 부분에 있어서는 전혀 선택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또 사실이 아니기도 했다. 오델로는 식당을 개업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data만 가지고도 그 식당의 음식이 얼마나 팔릴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실제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것임에도 오델로가 플랫폼 기업과 연계해 광고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편향된 추천을 제공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그럴듯한 주장이었다.


이런 여러 사건들을 거치면서 오델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이 점차 늘어났다. 사람들은 오델로가 주는 직관적인 기능에는 열광했지만, 오델로가 자신들에게 어쩌면 손해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는 오델로도 사실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나는 종종 오델로에게 사람들이 오델로에 대해 가지는 부정적인 인식을 수치로 물어보곤 했었는데, 최근 들어 그런 수치들이 늘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오델로의 신뢰도에 영향을 주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분명히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될 것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델로를 통해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꼭 해결해야 될 문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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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그런 와중에 나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오델로의 빠른 성공은 나에게 엄청난 명예와 부를 가져왔다. 나는 시대의 아이콘이 되어 있었다. 영재 프로그래머 출신의 대단한 사업가, 어두운 20대를 이겨내고 화려하게 부활하다. 사람들의 가십을 자극하기 너무나 좋은 스토리였다. 실패로 가득했던 20대는 사람들에게 되려 하나의 신화처럼 받아들여졌다. 사람들은 나를 오델로와 동일시했다. 나는 이렇게 유명해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델로를 런칭하는 과정에서 회사가 너무나 강력하게 나의 등장을 강요했기 때문이었다.


회사가 걱정했던 것은 오델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그들은 상상할 수 없는 비용과 수단을 동원해서 오델로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고자 했다. 그런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회사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었다. 오델로가 기업의 영업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는 인식만 없으면 됐다. 스스로를 지우는 일. 사실 세상에 그것만큼 어려운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회사에게 가장 좋은 것은 나라는 사람을 전면에 부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그런 회사의 목적에 너무나 부합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초심을 잃지 않았다. 나에게 돈과 명예란 사실 그리 와닿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나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더 나은 선택을 내리는 것에 있었다. 오델로가 인기를 얻을수록 나의 영향력은 커졌지만, 나는 되려 그런 영향력조차 부담스러웠다. 사람들이 나로 인해 스스로의 삶을 별 볼 일 없이 여기는 것만큼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은 없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너무나 순진했고, 또 회사는 그런 나의 모습을 너무나 영악하게 알았던 것이다. 어쨌든 내가 전면에 나섬으로써 오델로는 선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나에게도 그것은 나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용자의 증가가 멈추고, 오델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늘어나면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나는 회사와의 관계를 정리해야 할 필요가 생겼음을 느꼈다. 나의 생각은 단순했다. 회사의 지분을 모두 정리하고 이 프로그램을 공공재로 돌리는 것이었다. 공공재단의 형식으로 운영하되, 필요한 비용 마련을 위해 여러 기업들과 협업하는 방식이었다. 회사에게는 지분을 대가로 협업에 드는 비용을 면제해 주는 것도 고려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서 나의 지분을 팔 생각도 있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회사의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오델로였다. 이런 나의 질문에 계속해서 No라고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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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이 일어난 것은 그맘때였다.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상한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일본으로 가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오델로가 계속 여행을 가도 되냐는 질문에 안된다고 답변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류의 구체적이지 않은 질문에는 대답을 회피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오델로의 패턴이었다. 사용자는 너무 이상해서 여행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던 것이었다. 그러자 비슷한 시기에 일본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오델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 중에 몇 명에게도 여행을 가지 말라는 오델로의 답변이 있었다. 그리고 그 들이 모두 같은 항공편을 예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가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항공편을 취소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항공편을 바꿔 다시 오델로에게 질문을 하기도 했다. 항공편을 바꾼 질문에는 오델로는 평소와 같이 대답을 내어놓지 않았다.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다. 어떤 사람들은 오델로의 오류라며 대수롭지 않게 굴었다. 그리고 당일. 오후 1시 인천공항을 출발해 일본 오사카로 향하던 항공기는 엔진 고장으로 인해 오사카 공항에 착륙하지 못했다. 현해탄 위로 추락한 것이다. 그리고 오델로의 대답에 따라 여행 일정을 취소하거나 변경한 사람들은 살아남았다. 오델로는 대형 사고를 미리 예측했던 것이다.


이 사고는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지만, 오델로를 만든 나에게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오델로가 사고를 예측한 정확한 경로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반복된 딥러닝을 통해 학습하는 오델로는 비행기 사고의 패턴도 학습했음이 틀림없었다. 사고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오델로가 사고를 정확히 예측했다는 뉴스가 쏟아졌다. 오델로는 이제 더 이상 선택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어서 크고 작은 사건들이 터졌다. 어떤 사람이 사회적 악의를 품고 백화점 건물에 방화를 저질렀는데, 실제 많은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이 역시도 오델로는 정확히 예측했다는 증언이 쏟아졌다. 사건 당시 백화점에 있었거나 갈 예정이었던 사람들이 오델로의 답변들을 근거로 이를 알고 있었다는 주장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델로는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프로그램이 되었다. 가입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특히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녀들을 모두 가입시키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오델로에게 일일이 확인을 했다. 대부분은 오델로가 대답을 회피할 수밖에 없는 질문 유형이었다. 사람들은 되려 답답한 반응을 보였다. 지금처럼 선택지를 골라주는 방식에 대한 불만이었다. 오델로가 가지고 있는 능력에 비해 그것을 표현하거나 전달하는 방식이 너무 제한적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회사와의 지분 문제는 당분간 다룰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회사는 가입자 폭증을 이유로 대규모 투자를 권했다. 나는 반년의 개발을 통해 새로운 버전을 시장에 내어 놓았다. 오델로 2.0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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