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상상하고, 쓰는 시간에 대하여
나는 거의 하루 종일 노래를 듣는다.
수면제를 먹고 잠든 두어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이 그렇다.
지겹지는 않다.
아직 듣지 못한 노래는 너무 많고,
아마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다 들을 수 없을 만큼
세상에는 노래가 많으니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이렇게 많은 노래들이 어떻게,
도레미파솔라시도—
이 한정된 음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걸까.
조금만 변주를 주어도,
조금만 높낮이를 바꾸어도
음악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한다.
어떤 작곡가는 한 곡을 위해 몇 년을 쓰고,
어떤 작곡가는 단 10분 만에 곡을 완성한다.
나는 듣는 것만 할 줄 알지
음악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한 사람이라
그 사실이 늘 신기했다.
대신 나는,
음악 위를 흐르는 가사에 더 귀를 기울이는 편이다.
이 사람은 이 곡을 쓸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무슨 말을 꼭 하고 싶었을까.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첫사랑에 실패한 사람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그 자리에 웅크린 모습.
영원한 사랑을 믿으며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을 주고받는 장면.
혹은 이 불완전한 사회를 향해
신랄하게 울부짖는 모습까지.
그런 상상들은
글을 쓸 때 의외로 큰 도움이 된다.
아, 헤어질 때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는구나.
슬픔은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그런 것들을 배운다.
나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노래를 듣는다.
가끔은 모르는 언어의 노래가 흘러나와도
멜로디와 분위기만으로 상상해 본다.
아, 이건 이별 후의 상실 같아.
그러다 가사를 찾아보고
내 짐작과 맞아떨어지면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또 그런 날도 있다.
어느 한 곡에 꽂혀
하루 종일 반복 재생을 하는 날.
그런 날은
이상하게 글도 잘 써진다.
그 감정이 고스란히 글 속으로 흘러들어 가
한 문단을 채워주기도 한다.
하루 종일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던 나를 보고
남편이 내 어깨를 톡, 두드렸다.
나는 이어폰을 빼고 고개를 들었다.
“매일 그렇게 듣고 있으면
질리거나 답답하지 않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왜?
노래는 들을 때마다 새롭던데.”
농담처럼 덧붙였다.
“혹시 내가 당신보다 먼저 하늘로 가게 되면
내 장례식엔 이 노래 틀어줘.”
그러면서
이어폰 한쪽을 남편의 귀에 꽂아주었다.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피식 웃었다.
그 순간
내 귀를 스쳐 지나가던 음악은,
Kenshi Yonezu
〈Chikyugi – Spinning Glo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