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우울은 그런 색이었다.
“하늘이 파랗고 파랗고… 파랬다
내 우울은 그런 색이었다
아름답고, 동시에 공허하고—
언제든 이 삶을 끝내도 좋을듯한 찬란함 속에.
내 우울은,
그런 곳에 있었다.”
멍하니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다 든 생각이었다.
내가 생각한 죽음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너무 쉽게 입에 담아버린 죽음은,
언제든 날 찾아올 것처럼, 가볍고도, 사뿐했다.
요즘 들어 죽기 전에— 란 말이 입에 붙었다.
“나 죽기 전에 이거 해보고 싶어.”
“나 죽기 전에 여기 꼭 가보고 싶어. 안 그럼 후회할 거 같아.”
이런 식으로 말이다.
처음엔 움찔이며 놀란 눈을 뜨던 남편도, 그저 익숙해진 듯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게 얼마나 무거운 말인지도 모른 채 나는 습관처럼 그 말을 써댔다.
어느 날 딸아이가 일본에 놀러 가고 싶다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덥석, 생각 없이 말을 내뱉었다.
“일본 좋지. 엄마도 죽—“
아.
입을 재빨리 다물었다.
아이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죽?”을 따라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엄마도 쭉— 가고 싶었던 곳이라고! 하하.”
아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완벽한 임기응변이었다.
재치 있게 받아쳐 준 나 자신에게 스스로 감탄하며,
처음으로 그 녀석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래, 네 덕분에 글쓰기가 늘어서 다행이다.
아이는 눈치 못 챈 듯 그저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내 입에서 나오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쉽게 가벼워져 있었다.
나는 멋쩍은 입을 다물고,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반성하자.
이 얼마나 부끄러운 말이었던가.
얼마나 사소하게, 가볍게 내뱉어온 말이었던가.
말은 힘이 있다 했는데,
그렇게 치면 나는
이미 수백 번쯤은 죽었을 것이다.
오늘은,
그 말을 조금 덜 쓰기로 했다.
아주 사소하게,
조금 더 살아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