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나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다.
이야기는 잘 들어주는 편이지만, 맞장구를 쳐야 할 때나 빈말로라도 칭찬이나 격려를 건네야 할 순간이 오면, 늘 머뭇거리며 입술만 달싹인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또 거짓말 못하네.”
하며 웃고 넘기지만, 나는 나름대로 그게 심각했다.
“내가 제멋대로 뱉은 한마디에, 누군가가 오해하고 상처받는 게 싫어.”
사람들은 되묻곤 했다.
“왜 네 말에 상처받을 것부터 생각해? 그건 그 사람이 해석하기 나름이잖아.”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그 사람이, 나쁜 쪽으로 해석하면 어떡해.”
걱정도 팔자라며 그들은 웃어넘겼다.
그 순간에도 나는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못한 채, 앞에 놓인 차를 마셨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누군가는 용기를 얻고,
누군가는 삶을 놓아버린다.
나는 그 무서움을, 실제로 겪어본 적이 있다.
내 아버지는 20여 년 전 돌아가셨다.
이미 손쓸 수 없을 만큼 병이 퍼져 있었고, 하루하루가 고비였다.
특히 먹지 못하는 고통을 심하게 호소하셨기에, 우리 가족은 매 끼니마다 눈치를 보며 숨을 죽인 채 식사를 했다.
그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던 나는, 식사 시간이 고문처럼 느껴졌다.
먹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음식 냄새를 풍기고,
그 음식을 씹어 삼키고,
배부름에 만족해하며 설거지를 하는 모든 행위가
아버지에게 죄스럽고, 미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눈치 보며 밥을 먹는 오빠와 내가 너무 안쓰러우셨는지,
아버지가 누워 계시던 방문을 닫고 몰래 고기를 구워주셨다.
나는 아버지가 일어날까 봐 불안에 떨었고,
오빠 역시 눈치를 보다가도 눈앞의 고기를 보자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차라리 외식을 했어도 됐을 텐데, 왜 굳이 집에서 고기를 구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아버지 곁을 비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기를 한 점 집어 천천히 씹었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며 통증이 올라와,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물을 삼켰다.
그때, 별안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흠칫 어깨를 떨며 다시 불안에 휩싸였다.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 아버지와 무언가를 나누셨고, 점점 언성이 높아졌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참아왔던 마음을 쏟아내듯 소리를 질렀다.
“어쩌다 한 번이잖아. 정말 오랜만에 먹은 거잖아.
아빠도 그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잖아. 왜 엄마한테 화를 내?”
부모님은 동시에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 아버지의 핼쑥하고 초췌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
그깟 고기,
안 먹으면 그만이었는데.
조금 더 참아도 됐는데.
나는 저게 뭐라고, 아빠에게 화를 냈을까.
아빠도 먹고 싶었을 텐데,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을 텐데.
밑바닥에서부터 감정이 치솟아 올라 나를 옥죄었다.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얼굴을 가린 채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 말만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오빠가 다가와 내 등을 조용히 두드려주었다.
아버지는 우리 둘을 오래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씀하셨다.
“그래. 산 사람은 먹어야지. 네 말이 맞다.”
아버지는 그 말을 남기고,
그 후로 더욱 곡기를 끊으셨다.
그리고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그 말은 오랫동안 내 가슴에 남았다.
내가 내뱉은 한마디가 아버지의 마음에 얼마나 깊이 박혔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장례식 내내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눈을 감으면,
내 말에 떨리던 아버지의 눈빛과
조용히 숨을 내쉬던 그 표정이 또렷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이제 그 표정은 많이 흐릿해졌지만,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 나는 한없이 가라앉는다.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두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땐 내가 어리석었어요.
아버지를 아프게 할 생각은 없었어요.
용서해 주세요, 아빠.
정말 미안해요.
그래서 나는 여전히 붙임성이 좋지 못하다.
먼저 말을 거는 일 자체가 거의 없다.
스스로를 향한 말은 거침없이 내뱉으면서,
다른 누군가를 향한 말에는 지나치게 엄격해진다.
한마디 말이 누군가를 살릴 수도,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는 걸,
말에는 그런 힘이 있다는 걸—
나는, 아마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