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여기 있고, 내년엔 또 저기쯤 있겠지.
“음.”
마주 앉아 있는 남편을 향해 턱을 괴고 말을 걸었다.
“있지. 나랑 왜 결혼했어?
이렇게 심심하게 살 줄 알았으면 안 할 걸 그랬지?”
남편은 웃음을 삼키듯 머그잔을 들어 올렸다.
“새해 아침부터 무슨 그런 소릴 해.”
나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식탁 한켠에 놓인 2025년 달력을 대충 넘겨보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25년도 아직 낯선데,
이제 26년이라니까 좀 안 믿겨서.”
“그건 그렇지.”
“심지어 어제 제야의 종소리도 못 들었어.
매년 챙겨봤었는데.”
그는 작게 웃으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연도가 바뀐 화면을 보여주며 신기해했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 괜찮은 걸까. 이렇게 살아도.”
고개를 든 남편이 나를 보며 갸웃거렸다.
“우리가 뭐가 어떤데?”
나는 잠시 눈치를 보듯 말을 고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니… 나 아프다는 핑계로 일도 못 하고 있고,
애는 커 가고 있고…”
“또 쓸데없는 걱정 한다.”
나는 식탁에 기대듯 엎드려 깊은숨을 내쉬었다.
일은 해야 할 것 같았지만,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차라리 예전처럼 누가 등을 떠밀어 줬다면,
어쩔 수 없이라도 했을 텐데.
이미 알아버린 공포가
다시 덮쳐올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흘러만 가는 시간들이
아쉽고, 불안했다.
“다 지나가는 길이야.”
남편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는 나를 보지 않은 채,
혼잣말처럼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는 그냥 여기 있는 거고,
내년엔 또 저기쯤 있을 거고.”
아무렇지 않게 던진 그 말을
나는 천천히 곱씹었다.
그래. 그 말이 맞다.
내 앞의 1분도 알 수 없는데,
미리 걱정한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그저 주어진 자리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는 말처럼.
26년에 나는 무엇을 하게 될까.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될 수도 있고,
어쩌면 더 좋은 글을 쓰게 될 수도 있다.
운이 좋다면, 로또가 될지도.
“그리고 난.”
남편이 덧붙였다.
“당신이랑 결혼해서 아주 재밌어.
하루하루가 시트콤이야.”
“뭐?”
“안 심심하다고.
그러니까 걱정 말라고.”
나는 조용히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무뚝뚝한 사람이
이런 말을 다 하네.
“알았어. 고마워.”
기분 좋은 한마디로
26년을 시작할 수 있어서
마음이 조금 설렜다.
부디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아름다운 추억들만 차곡차곡 쌓이기를.
남편이자,
무엇보다 내 편인 사람과
사랑하는 작은 공주님과 함께 맞이할 새해가
조금은 더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