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막내 고양이, veri 입양기
아내는 고양이를 데려오고 싶어 했다. 어린 시절부터 강아지, 토끼, 관상어, 앵무새, 거북이... 등 여러 종류의 반려동물과 함께했지만 고양이는 길러본 적이 없었다. 반대로 나는 동물이라곤 초등학생 시절 병아리를 키워본 것뿐이었다. 많은 초등학생들이 병아리를 입양하지만 잘 키우지 못하고 허망한 죽음을 목격하고 마는데, 같이 살았던 우리 할머니가 도와주셔서 닭이 될 때까지 키울 수 있었다.
할머니가 알려주신 건 병아리는 모래를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치아가 없는 병아리는 소화를 시키기 위해 땅바닥에서 모래를 쪼아 먹고 모래주머니에서 모래와 섭취물이 섞이며 갉아져 소화되는 원리였다. 아파트에서, 박스 안에서 길러지는 병아리는 모래를 먹지 못해 죽는 것이었다. 그걸 알고 계셨던 할머니의 지혜가 놀라웠다. 도시 생활만 한 어른들도 이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아주 많으니 얼마나 많은 병아리가 보호자의 무지로 인해 모래를 먹지 못해 죽게 되었을까. 사실 인터넷에 병아리 기르는 법을 검색만 해봐도 나올 텐데, 그마저도 하지 않고 유독 병아리의 생명은 가볍게 여겨지는 것 같다. 한 생명에 대해 온전히 책임을 지기 위해선 많은 것을 노력하고 알아야 한다는 걸 배운 계기였다. 병아리는 어떻게 됐냐고? 마당에서 모래를 잘 먹고 성장한 나의 병아리는 닭 비슷한 덩치까지 커졌으나 고양이가 물어가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너무 슬프고 미안했다.
그 이후로 반려동물은 키우지 않다가 고양이를 키우게 된 것이다. 병아리를 납치해 간 그 고양이를. 아내는 유기된 불쌍한 고양이를 데려오자고 했다. 품종묘라고 하는 외모가 이쁘고 선호되는 애들보다 누군가에게 버려져 상처받은 아이를 보살피고 싶어 했고 나도 동의했다. 한 분양샵에 들어갔는데 앞쪽엔 작고 귀여운 아기 고양이와 품종묘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직원을 따라 들어간 작은 뒷 공간에 내가 만나러 온 유기묘가 격리되어 있었다. 드디어 만난 고양이를 마주한 순간 기분이 좀 이상했다. 불쌍한 유기묘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의미 있게 다가왔고 기분이 분명 몹시 좋았는데 그 애를 처음 본 순간, 속된 말로 살포시 눈을 깔게 됐다. 병아리 생각이 나서였을까. 그 서늘한 눈빛을 마주하니 학창 시절 무서운 형들과 눈이 마주친 때처럼 자연스레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우리 집 거실에 그 아이가 있는 걸 상상하니 내가 병아리가 된 것만 같았다. 아내가 눈치를 채고는 혹시 무서운 거냐고 물었다. 그 애를 무서워한다는 게 그 애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성인 남자로서는 좀 창피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얼버무렸지만 아내는 놀리지 않고 알아줬다. 그 애를 생각하면 계속 미안하다.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집사들 사이에 묘연이라는 단어가 있다. 나는 이걸 베리에게서 느낀다. 어느 한 동물 병원에서 고양이 몇 마리를 분양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밝은 갈색과 검은 색상의 털이 마치 볏짚처럼 보이기도 하고 까투리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고양이 한 마리가 평화롭게 쓰러져 자고 있었다. 나중에 아내가 하는 말인데, 자기는 너무 색깔이 투박하고 말라서 건강하지 못한 건 아닌가 걱정했단다. 솔직히 못생겼었다고도 했다. 나는 그 볏짚 같은 아이가 처음부터 쏙 마음에 들었고 정말 순식간에 정이 들어버렸다. 신중하기 위해 연락을 주기로 한 뒤 동물 병원을 나서는 순간부터 내 아이를 두고 나온 기분이 들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좁고 무서운 곳에 내 새끼를 두고 나오다니. 짠한 내 새끼.. 결국 얼른 다시 돌아와 내 새끼를 안고 집으로 갔다.
veri는 불어 'La verite'에서 따왔고 의미는 '진실'이다. 부부간에 진실하기로 한 우리의 다짐이고, 더 다정한 가족으로서 베리와 행복한 삶을 지키겠다는 의지이다. 내 새끼 veri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더 나은 부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