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회피형 남자의 변명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동굴에숨고 싶을때가 있다

by 알바트로스

어느 유튜버가 절대로 만나지 말아야 할 최악의 연인 유형으로 회피형 남자를 꼽았다. 하지만 살다 보면 누구나 가끔 자신만의 동굴에 틀어박히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우리가 동굴에 틀어박히는 이유는 연인을 사랑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싶어서도 아니다.


금요일 저녁 오피스를 나서는 순간 나는 이번 주말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가끔 한 번씩 찾아오는 나만의 동굴에 틀어박혀 한동안 나오고 싶지 않은 그런 날. 나에게는 이번 주말이 딱 그랬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보이는 환상적인 한강뷰가 오늘따라 센티하다. 소주 두 병과 캔맥주 두 캔. 그리고 쓰린 속을 달래줄 과자 부스러기 몇 개를 사들고 집으로 향한다. 이거면 됐다. 맛있는 안주와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줄 술친구는 나에게 과분한 사치일 뿐이다.


하우스메이트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문을 쾅 닫는다. 미안하지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테니 오늘은 괜히 위해준답시고 찾아와서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무언의 부탁이다.


소박한 안주들과 삭막한 방안에 bgm 삼아 영화를 틀면 나만의 대화 공간과 술상이 완성된다.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천천히 알코올을 할당량만큼 내 몸에 채워 넣는다. 캔맥주 한 캔을 순식간에 들이붓고 살짝 몽롱한 상태가 되면 드디어 자신과의 대화를 할 준비가 끝난다.


나는 가끔 나만의 동굴에 틀어박혀 나 자신과 단둘이 술자리를 가진다. 그곳에서 서럽게 흐느끼다가 이내 펑펑 울기도 하고 미친 사람처럼 나지막이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묘한 안도감에 실실 웃기도 하고,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서 다시 찾아오는 공허함과 싸우기도 한다.


천만다행인 것은 이런 내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해는 하지 마시길 바란다. 술자리에서 나는 주사가 거의 없는 편이다. 주사라고 한다면 그저 남의 말을 계속 듣고 있는 것 정도라고 할까? 그만큼 나는 타인과의 술자리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따라서 이런 나의 모습을 온전히 알고 있는 것은 오롯이 나뿐이다.


우리는 동굴에 틀어박혀 세상으로 다시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일 뿐이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처절하게 망가져야만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흐느껴 울고, 자신을 부정하고, 후회에 몸서리치고 난 뒤에 찾아오는 어떤 감정이야말로 우리가 동굴에 틀어박혀야만 하는 진짜 이유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