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아테네 하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 파르테논 신전, 민주주의... 하나같이 역사책에 등장할 것 같은 멋들어지고 거창한 것들이다. 그리스는 유럽 문화의 뿌리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세계를 호령하던 대제국 로마도, 해가지지 않는 나라 영국도, 자타공인 초강대국 미국의 문화도 모두 이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8년 겨울 아테네 여행은 우리가 함께한 첫 지중해 여행이자 유럽여행이었다. 유럽 문화의 뿌리라는 아테네의 상징성을 논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 떨리고 설레는 여행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여행을 마치고 난 뒤 아테네는 나의 기억 속에 의외의 모습을 가진 거친 도시로 남아있다.
아테네에서 지중해 사람들 특유의 여유 있고 넉넉한 인심을 기대한다면 실망하게 될 것이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 바빠 보이고 삶이 팍팍해 보이는 사람들과 그와 어울리는 무시무시한 스토리까지... 아크로폴리스가 올려다보이는 평화롭기만 한 저 길에서 얼마 전 밤 산책을 나왔던 영국인 부부가 소매치기를 만나 피살되었다고 한다.
아테네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역시 소매치기다. 집시와 소매치기가 많기로 유명한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도 물건을 도둑맞은 적이 없었던 나는 아테네에 와서 처음으로 장만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폰을 소매치기당했다. 당신이 만약 사람들로 가득 찬 아테네의 만원 전철에서 주머니에 아이폰을 넣고 양손에 도넛과 쇼핑백을 들고 있다면 거의 100%의 확률로 소매치기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테네는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아테네의 고대 유적은 그 자체로 빛나는 보석 같았다. 아테네 중심부에 우뚝 솟은 아크로폴리스(Acropolis)는 그리스어로 높은 언덕 그 자체를 뜻한다고 한다. 당시 유일한 유권자이자 자유민 신분이었던 성인 남성들이 국방의 의무와 신탁을 하러 모였던 곳이다.
아크로폴리스의 유적군은 아테네 여신에게 봉헌되었다는 그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하여 우리에게 '나이키'로 익숙한 승리의 여신 니케(NIKE)를 위한 신전 등 찬란했던 아테네가 이제는 폐허 속에 묻혀있는 곳이다. 보수공사 중인 신전은 여기저기 철근이 흉물스럽게 박혀있다. 여기서도 특유의 무질서함과 '그리스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아테네는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참 어울리는 도시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상향으로 생각하던 이 도시는 생각보다 무질서하고 투박했으며 불친절한 도시였다.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기원전 5세기 아테네 사람들은 자신들의 후손들이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을 알았을까? 그리고 자신들의 도시가 폐허 속에 묻히게 될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늘도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