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멋진 국명을 가진 나라일 것이다. 카자흐스탄이라는 국명의 '카자흐'는 '기승자', '자유인', '독립인'을 뜻한다고 한다. '스탄'은 아시다시피 나라를 뜻한다. 즉 직역하자면 카자흐스탄은 '자유인의 나라'라는 뜻이다. 유라시아 대륙을 떠돌아다니던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이 세운 나라답게 국명에서부터 호탕함과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한 가지 장소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항상 떠돌아다니는 우리의 본능은 항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다. 흔히 말해 역마살이 심하게 끼어버린 우리는 인생의 절반을 외국에서 보낸 것도 모자라 전 세계 26개국을 돌아다니며 유목민의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떠돌아다니게 만드는 것일까? 이번 카자흐스탄 여행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카자흐스탄의 첫인상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눈보라가 퍼붓던 상공에서 바라본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티는 매캐한 공기와 어우러져 구소련 시대의 공장지대를 연상시켰다. 알마티 국제공항의 출입국 심사대에서는 마치 북한 인민군 혹은 중국 공안을 연상시키는 복장을 한 군인들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는 여권에 입국도장이 찍히는 순간까지 잔뜩 졸아서 스마트폰을 꺼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시골의 버스 터미널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작은 공항에서는 카자흐스탄 유목민들이 입고 다녔던 독특한 전통의상과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 왠지 낯이 익는다. 동서양 혼혈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 틈새에서 누가 봐도 한국인처럼 생긴 사람들이 낯선 언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공항에서부터 현지인들이 계속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러시아어도 못하고 카자흐스탄어도 못한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말을 계속 걸어왔다. 마치 "야 인마, 너 카자흐스탄 사람인 거 다 알아!"라고 말하는 것 같은 사람들에게 묘한 동질감과 함께 고향에 돌아온 느낌마저 들었다.
뼛속까지 얼려버릴 것 같은 카자흐스탄의 추위를 뚫고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알마티 중앙 박물관이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서 박물관을 찾은 가족들로 박물관 내부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유목민들의 특성을 그대로 간직한 카자흐스탄의 게르는 내부가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공항에서 느꼈던 카자흐스탄에 대한 동질감과 데자뷔는 박물관에서도 계속되었다. 위대한 정복자이자 훈족 최후의 왕으로 유럽에서도 그 명성이 높은 '아틸라'의 흉상을 비롯하여 신라시대 황금관과 완전히 똑같이 생긴 왕관이 전시되어 있는 카자흐스탄은 확실히 한국과 어떤 접점을 가지고 있는 나라임에 확실해 보였다. 북방의 유목민들은 한반도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그 먼 거리를 본능처럼 떠돌아다녔던 것이다.
박물관의 한켠에는 구소련 시절 중앙아시아에 보내졌던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한복과 탈이 전시되어 있었다. 실제로 카자흐스탄에는 약 8만 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소수민족 중 9번째로 많은 수를 차지한다고 한다.
구소련 멤버였던 카자흐스탄답게 도시 곳곳에서 설국 느낌이 물씬 나는 자연과 러시아스러운 건축물과 풍경을 만나볼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실크로드다운 미친듯한 다양성이다. 전형적인 러시아식 건축양식의 그리스 정교회 건물 근처에는 화려한 이슬람 사원들이 늘어서 있다. 어느 현지인 할아버지는 흔쾌히 나를 이슬람 사원 안쪽으로 안내했다. 다소 무뚝뚝해 보였던 카자흐스탄 사람들과 황량한 풍경과는 다르게 여행이 계속되면서 그들의 대인배스러운 매력을 알 수 있었다.
다소 유럽스럽고 의외로(?) 퀄리티가 높은 알마티의 일루미네이션은 카자흐스탄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에 속해있는 국가이기도 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유럽과 훨씬 더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자유인의 나라' 카자흐스탄에서 진정한 노마드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내 안에 새겨진 유목민 유전자라는 생물학적 동기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본질적인 것은 유목민이 이동과 자유를 사랑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나 명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저 그렇게 하는 것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면 우리는 진정한 '자유인'으로 불릴 자격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