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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바트로스 Sep 03. 2021

인생 첫 비상금 대출을 받아보았다

돈이 돈같지 않은 시대

요즘 투자에 재미가 들렸다. 연초부터 빨간불과 파란불을 오가며 조금씩 불어나던 원금은 어느덧 1.5배를 넘어 2배를 향해 가고 있었다. 흔히들 말하는 존버의 결과다. 조금 무리해서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겨두고 은행계좌의 현금을 탈탈 털어 주식과 코인 계좌에 몰빵을 해버렸다. 투자에서 지나친 탐욕은 경계해야 한다고 하지만 내가 욕심 좀 부려 보겠다는데 뭐 어쩔 건가? 하락장을 한두 번 겪어본 것도 아니고 어차피 인생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다. 가즈아~!


그동안 빚을 지는 것에 큰 거부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인데 회사생활 할 때에도 그 흔한 대출 한번 받아본 적이 없었다. 결국 내 돈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당연히 돈을 빌리는 대에도 비싼 돈을 내야 한다. 할부나 신용카드도 예외는 아니다. 꼼꼼히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날강도도 이런 날강도들이 없다. 하다못해 친구에게 밥 한번 얻어먹어도 왠지 모르게 빚을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기어이 친구를 꼭 불러내어 경쟁하듯 더 비싼 밥을 사고는 했다.


그런데 월세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적어도 연말까지는 투자금에 손을 대고 싶지 않다. 투자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바람은 빚에 대한 나의 심리적 장벽을 너무나도 쉽게 무너뜨려 버렸다. 얼마 전 친구가 이야기해준 카 x오 뱅크의 비상금 대출이 생각났다. 나는 즉시 앱을 켜고 본인인증을 하고 계좌를 만들었다. 앱을 켜고 계좌 개설까지 걸린 시간은 3분이 채 되지 않았다. 곧바로 상단의 '비상금 대출'을 클릭했다. 몇 가지 질문에 답하는 화면으로 이동했다.


'직업이 무엇입니까?' 나는 '프리랜서와 사업자'라고 답하고 사업자등록번호를 써냈다. 다음 질문은 '대출 경험은 있습니까?'였다. 답은 당연히 '없음'이었다. 마지막으로 연수입과 자산규모를 입력하면 신청절차는 끝이 난다. 그러자 곧바로 '당신의 신용점수는 000점입니다. 대출심사결과 대출이 가능합니다.'라는 내용의 메시지가 떴다. 너무 간단했다. 대출신청과 승인에 걸리는 시간은 단 5분이면 충분했다.


곧바로 비상금이 최대한도로 계좌에 입금되었다. 생각보다 높지 않은 이자로 비상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내 생애 첫 비상금 대출하기 프로젝트가 끝이 났다.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니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대출은 너무 쉬웠다. 돈 빌리기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 주문하는 것만큼 쉬운 세상인 것을 보니 정말로 시중에 돈이 남아돌기는 하나보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유래 없는 양적완화 정책을 감행하고 있다. 30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인플레이션을 요즘처럼 몸소 체감할 수 있는 시기는 없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돈이 돈 같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집값이 오르고 각종 자산 가격이 치솟는 와중에도 이제 이것을 버블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어색한 지경이 되었다. 


대공황과 경제위기에도 좀비같이 강한 생명력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은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이 이제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 와중에 한국은행은 치솟는 집값을 잡아보겠다며 선진국 최초로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미 돈을 돈같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제 나도 돈 보기를 돌같이 하며 마음 편하게 살아보려고 한다. 어쩌면 그게 이 시대의 조류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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