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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바트로스 Sep 02. 2021

고작 에세이가 인생책이 될 줄이야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소설책이나 에세이를 읽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남들의 소소한 이야기보다는 거창한 철학이나 인문학 책 정도는 읽고 목과 머리가 뻐근한 느낌을 받아야 책 좀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다못해 먹고사는 일에 하나라도 보탬이 되는 자기 계발서라도 읽어야 했다. 일상의 사소한 고민들을 그보다 훨씬 큰 무언가로 덮어버리는 것. 독서는 나에게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그런 것이었다.


얼마 전 공유 오피스 한켠에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책 제목이 한눈에 봐도 힐링 에세이다. 힐링은 책 한 권 읽는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던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야다. 어쨌든 나는 일하기 싫어서 한껏 농땡이를 부리고 있던 차에 잘됐다 싶어 얼른 책을 집어 들었다.



첫 장부터 문체가 낯이 익었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글인 것 같아서 찾아봤더니 브런치에서 활동하시던 하완이라는 작가님이 쓰신 책이라고 한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고향 선배라도 만난듯한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30대 후반에 회사를 그만두고 좋아하는 디자이너 일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어? 이거 딱 내 얘기잖아? 비록 나이는 내가 조금 더 어리고 디자인에도 관심은 없지만 어쨌든 생각보다 작가님과 접점이 많다.


자학개그와 유머러스한 문장이 적절히 섞여있어서 읽는데 부담이 없다. 그럼에도 에세이답지 않게 문장 하나하나에 깊이가 있다. 평소 답답하지만 뭐라 말하기 힘들었던 부분을 긁어주는 뭔가가 있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을 파고든다. 회사생활과 백수생활 그리고 프리랜서 생활을 모두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인생의 지혜가 묻어난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에세이를 읽는 거구나.


저자는 더 이상 견디는 삶을 살지 않기로 선포한다. 대신 즐기는 삶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꿈을 이루던 못 이루던 과정 자체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말. 남들이 뭐라 해도 하고 싶은 대로 해본 사람은 성공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해도 적어도 후회는 없다는 말. 꼭 나에게 필요한 말이었다. 또한 기대라는 기준치가 사라지면 인생에 실망할 일보다는 기쁠 일이 훨씬 많다는 말. 덮어놓고 다 잘될 거라는 무책임한 말이 아닌 자신만의 철학에서 우러나온 말인 것 같다.


저자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오히려 과대망상증에 빠질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나는 그 정도 인간이니까."라는 말은 생각만큼 부정적인 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자존감 높고 기쁜 삶을 사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 외에도 직장을 다니면서 600만 원 넘게 월급을 받으면서도 월급은 내 통장을 항상 스쳐가기만 했던 불가사의 한 미스터리도, 사회와 은행에서 자꾸 대출과 빚을 권하는 이유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 꼭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평생 행복할 수 없다. 자신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쉬운 일은 남들과 비교하는 것이라는 말도 꼭 들어맞는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휴 다행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잖아? 큰일 날 뻔했네'라는 말이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 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라는 책을 만났고, 소소한 경험과 에세이가 가지는 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특별할 것 없는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혹시 아는가? 브런치에 하나하나 정성 들여 써놓은 나의 글들도 출간되어 누군가의 인생을 크게 바꿔놓을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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