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바트로스 Sep 12. 2021

어느 가을날의 깨달음

지나간 순간들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제법 서늘하고도 기분 좋은 바람이 느껴지는 가을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어떤 꿈을 하나 꾸었고, 잠에서 깨자마자 문득 지극히 당연하지만 너무나도 서글픈 생각 하나가 뼈에 사무쳐왔다.


“지나간 순간들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구나.”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나는 놀러 가자는 친구들을 뿌리치고 아홉 살 터울의 어린 동생을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달려갔다. 부모님이 식탁 위에 두고 가신 꼬깃꼬깃해진 돈을 집어 들고 동생을 데리고 학교 앞 분식집에 들렀다. 우리는 간식거리를 양손 가득 사들고는 집으로 향하곤 했다.


내 손을 꼭 잡고 있던 동생의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이 아직도 생생하다. 가끔 이유 없이 울던 동생을 달래주던 기억도, 동생과 매일같이 보았던 만화영화도, 우리가 서로에게 베풀었던 작은 친절과 호의들도...


이제 그 다섯 살짜리 꼬맹이는 자라서 나만큼이나 덩치가 커졌다. 시간은 번개처럼 빠르게 흘러 어느새 나는 30대 아저씨가 되어버렸고, 동생은 이제 한국말보다는 영어가 편한 20대 미국 대학생이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가끔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는다. 다 큰 어른들이 주고받는 대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치하고 시답지 않은 그런 농담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시답지 않은 대화 속에서 지나간 세월들을 추억한다. 그러나 그때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음에 가끔 서글퍼질 때가 있다.


미국집을 방문하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에 공항에서 어머니는 매번 마치 세상이 끝날 것처럼 우셨다. 어렸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차피 반년 후에 또 볼 건데 왜 저렇게 우시는 거지? 그러나 어머니의 마음을 이제는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니는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 지나간 순간들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렇게 나는 오늘도 아주 조금씩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 첫 비상금 대출을 받아보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